이럴 거면 ‘식량주권’ 쓰지 마세요

  • 입력 2023.01.15 18:00
  • 수정 2023.01.16 09:01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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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정책은 어디까지나 식량 수입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이는 ‘식량자급률 향상’을 농정 공약으로 내걸었던 윤석열정부에서도 변함이 없다. 당장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새해 들어서도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 나서며 양곡관리법 개정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한편, 언제든 필요한 만큼 식량을 수입할 수 있는 공급망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정리한 기자가 잘못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당 인터뷰에는 ‘식량주권’ 확보를 위해 ‘전 세계’ 주요 곡창지대 내 유통망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농민들 입장에선 ‘그럼 그렇지’하는 한숨과 코웃음이 동시에 나올 법한 문구다.

‘식량위기론’의 대두 이후, 공공기관들의 보도자료와 이를 활용한 언론들의 기사에서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을 명확한 기준 없이 함께 사용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둘을 동일한 관점에서 바라보며 혼용하는 건 왕왕 있는 일이고, 개중엔 위의 사례처럼 하등 상관없는 행위를 식량주권 확보라 표현하는 사례까지도 나온다.

농식품부와 해양수산부 두 주무부처의 장관은 취임사에서부터 하나같이 ‘식량주권’을 언급하며 이를 신경 쓰겠다고 얘기했지만, 1년이 다 돼가는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각종 수입 농축산물 할당 관세 조치와 ‘쌀을 밀로 바꿔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논쟁뿐이다.

우리는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다. 국내 품종을 개발하고, 가루쌀을 내고, 조금씩 수요가 줄어드는 쌀을 대체해 심는 정도의 조치는 보조의 역할은 될 수 있을지언정 자급률을 위기에서 끌어올릴 수 없다. 정말 필요한 건 유의미한 자급률 목표를 설정하고, 농지를 늘리고, 정책을 통해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책임을 지겠다는 수준의 각오다.

잘못된, 혹은 별것도 아닌 생색내기를 여기저기서 식량주권이라 표현하니 오해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농정책임자는 우리나라 곡물 생산량이 필요량에 한참 미치지 못하므로 언제건 수입으로 식량안보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으니, 정부가 이야기하는 ‘식량주권’은 걸러 듣기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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