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파독 간호사·광부⑤ 가족을 두고 막장으로 떠나다

  • 입력 2023.01.08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1970년대 초에 서독에 건너가 베를린시립병원에 배속되었던 김순복 씨는 당시 자신이 받았던 첫 월급이 700마르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에서 받던 급여에 비하면 파격적으로 높은 액수였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에, 외화획득을 위해서 의무적으로 외환은행에 3년짜리 정기적금을 들게 했어요. 누구나 다요. 간호사 취업 계약기간이 3년이었거든요. 저는 그중에서 600마르크를 몽땅 적금으로 부치고 100마르크만 가지고 살았어요. 생활하기에 매우 빠듯했지요.”

하지만 워낙 바빠서 얼마 안 된 그 돈이나마 쓸 겨를이 없더라고 김순복 씨는 당시를 회고한다. 바쁜 중에도 모처럼 맞이하는 휴일은 숨통이 트이는 날이었다.

-얘, 순복아, 월급도 탔겠다, 오늘은 슈퍼마켓에 가서 닭이나 한 마리씩 사다가 고아 먹자.

-그러자. 그런데…상순이 너, 닭고기가 독일말로 뭔지 알어?

-그런 것 몰라도 되니까 따라만 와. 척하면 통하게 돼 있는 만국 공통어가 있잖아.

일단 두 사람은 슈퍼마켓으로 달려갔겠다. 그런데 큰소리쳤던 이상순이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서 ‘꼬끼오!’, ‘꼬꼬댁 꼬꼬!’…아무리 닭울음소리를 내도 점원은 고개를 가로젓더란다.

“알고 보니 독일 닭은 ‘꼬끼오’나 ‘꼬꼬댁’이 아니라 ‘키코르키(Kikerike)!’하고 운다잖아요. 젠장, 닭울음소리는 만국 공통이 아니었어요, 하하.”

뒤셀도르프 시립병원으로 갔던 하영순 씨도 닭고기 쇼핑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단체로 닭고기를 사러 몰려갔어요. 그런데 수탉은 고기가 질기거든요. 그래서 암탉고기를 사야 하는데 어떤 친구가 미리 달걀 하나를 들고 갔어요. 또 다른 친구는 미리 사전을 찾아서 ‘어머니’를 독일말로 ‘무터(mutter)’라고 한다, 이걸 종이에 적어갖고 왔더라고요. 점원 얼굴 앞에다 달걀을 들이대면서 여기 요 녀석의 무터를 내놔라, 그랬지요. 점원들이 배꼽을 잡고 웃더라고요. 그래서 그 날 우리 간호사 60명이 성공적으로 닭고기를 포식했어요.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그 슈퍼에 가면 점원들이 ‘계란 엄마 줄까요?’ 하며 놀려요, 하하하.”

그렇게 그들은 축난 몸도 보신해가면서 시나브로 ‘독일 간호사’로서의 걸음마를 떼고 있었다,

1973년 1월 29일, 김포공항 출국장에서는 서독으로 떠나는 광부들이 가족들과 부둥켜안고 눈물바람을 하고 있었다.

-집 걱정일랑 말고 어떻든 몸 성할 궁리만 해야 돼요.

-내가 뭐 죽으러 가나. 3년 동안 돈벌어갖고 돌아올 테니까 그 동안 철남이 잘 키우고….

독일로 떠나는 광부들의 경우에는 상당수가 기혼 남성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떠나는 김포공항 출국장의 이별장면은 간호사들이 떠날 때와는 그 풍경 자체가 달랐다. 먼 이국땅으로, 더구나 위험스런 지하 막장으로 남편과 아들과 형제를 떠나보내야 하는 가족들의 심사가 오죽했겠는가. 전남 강진이 고향인 1943년생 김원우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출국장이 눈물바다가 됐지요. 이역만리 서독 땅으로, 더구나 좋은 직장도 아니고 지하광산으로 보내야 하잖아요. 탄광에서 일어난 이런저런 사고들이 끊임없이 매스컴을 탔기 때문에 사람들은 광산 하면 아예 사지(死地)로 인식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 부모나 아내들의 심정이 오죽했겠어요. 저는 그때 서른 살 노총각이었지만.”

서독 파견 광부를 모집할 때마다 평균 10대1의 경쟁률을 보였는데, 광산에서 변변히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지원자들이 상당수였다. 탄광노동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지원 자격이 부여됐으나, 순전히 독일에 가기 위해서 아무 탄광에나 잠깐 적을 두었던 ‘위장 광부’가 많았다.

어쨌든 노총각 김원우는, 독일의 중서부에 위치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이라는 산업도시의 탄광으로, 석탄이 아닌 돈을 캐러 떠났던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