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결국 청년농민의 미래는 빵을 굽는 것인가?

  • 입력 2023.01.01 18:00
  • 기자명 현윤정(강원 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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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윤정(강원 홍천)
현윤정(강원 홍천)

얼마 전 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뒷풀이 장소로 빵이 맛있다는 곳을 예약해 두었다기에 가서 예쁘고 신기한 빵들을 실컷 맛보고 왔습니다. 한입 크기의 빵이 3,000~4,000원이었는데 수입 밀가루와 유제품 가격이 모두 인상되어 빵·아이스크림 등이 살인적으로 올라도 군말없이 빵을 집어듭니다. 기계사용값, 기름값, 퇴비값, 인건비 전부 올랐는데도 작년과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 중인 제 쌀 생각에 울컥했습니다. 요즘 왜 쌀값을 안 내리냐며 비싸서 못 사먹겠다는 말을 계속 들어온 터라 더욱 그랬을 겁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거 누군가의 큰 그림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에서 만난 청년농민들 셋 중 한 명은 빵을 굽고 있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베이커리형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각자 생산하는 주요 농산물을 가지고 가공체험이나 OEM, 카페 등의 형태로 소위 말하는 6차산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저 역시 3년 전 호기롭게 농산물 판매장을 짓고 당당하게 옥수수를 주력으로 하는 6차산업의 랜드마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때 옥수수를 베이스로 하는 아이스크림·빵·스프·샐러드·라떼 등등 여러가지 궁리를 했습니다. 귀농해서 창업한 초짜 청년 농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매장을 지키기도, 인건비를 들여 고용하기도 버거운 현실 앞에서 농사 또는 매장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주변에서 제게 농산물 판매장을 카페로 운영하라고 조언해 주십니다. 말을 잘 듣는다면 저는 옥수수·감자·고구마 빵 등과 함께 커피를 팔고 있겠지요. 그렇게 어느날부터 저는 청년농민이 아닌 지역 농산물을 유통, 소비하는 카페 사장으로 살게 되겠지요. 그러다 조금이라도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해 가격이 폭락한 농산물이나 싼 값에 들여오는 수입 농산물을 찾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라고 도입한 청년창업농 지원사업은 아닐텐데 말이에요.

지역에서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청년농민 친구의 일입니다. 얼마 전 이 친구가 큰 일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 지역 지자체에서는 1기 청년창업농 선정자들에게 반드시 사업비를 받아 토지를 구입하도록 했고, 그 친구는 본래 부모님이 하시던 농지 외에 추가로 토지구입자금을 연리 2%에 대출받아 농지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생산한 농산물을 활용해서 체험도 하고, 차와 빵을 판매하는 농가공체험장을 지었는데, 이번에 농림축산식품부 모니터링단이 농지 사용계획을 변경하지 않고 가공체험장을 지었다며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청년창업농 자격을 박탈했다고 합니다. 그날로 농협에서는 원금상환지시를 내려왔고, 농신보에서 당장 연리 6% 대출로 전환된다고 통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정부가 원하는대로 6차산업에 도전해서 열심히 해낸 것밖에 없는데, 하루아침에 땅 투기꾼 취급을 받으며 큰 잘못을 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2018년도 1차 청년창업농에 지원해서 떨어졌다가 추가모집에 간신히 붙었는데, 탈락 이유가 토종종자로 농사를 짓고, 소농으로 가공하지 않고, 친환경 농업 생산자로 살겠다는 목표를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그 사업은 농업생산량을 늘리고 6차산업으로 발전시킬 청년농민들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저와 함께 청년창업농에 선정되었던 청년농민들 대다수는 현재 토지구입자금을 대출받아 2억원 또는 3억원의 담보대출로 농지를 구입하고 가공장 또는 카페를 지어 빵을 굽고 있습니다.

정부의 ‘빅픽처’는 청년들을 농촌으로 불러들여 농촌소멸이 되지 않는 것처럼 위장해서 농업과 농촌을 지키는 일인 것처럼 하고, 청년들에게 최저임금도 안되는 생활비를 쥐어주고는 받는 것의 두 배는 족히 넘을 인건비를 지불하며 고용주가 되라고 부추기는 것이었을까요? 청년농민은 생산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대출 이자만 갚는 것도 버거운 현실입니다.

빵은 참 맛있습니다. 커피 좋지요. 그러니 청년농민들은 이제 카페밖에 답이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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