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비·판로 부담 덜어주는 것이 영농조합 최고 역할”

인터뷰 l 백승진 가톨릭농민회 원주교구 평창백오포분회장

  • 입력 2023.01.01 18:00
  • 수정 2023.01.01 19:21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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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지난해 어려운 농업 현실에서도 김치사업으로 농가의 판로를 열고, 상생을 위해 지역공동체 활동을 모색하는 농민회가 있다. 한겨울이 새봄을 품고 있듯 고단한 현실일수록 더 가치 있는 희망을 혼자가 아닌 함께 일궈가는 가톨릭농민회 원주교구 평창백오포분회(평창가농). 유난히 겨울이 긴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평창가농영농조합법인에서 백승진 분회장(60)을 만나봤다.

​백승진 가톨릭농민회 원주교구 평창백오포분회 분회장.​
​백승진 가톨릭농민회 원주교구 평창백오포분회 분회장.​

지난해 생산비 폭등·쌀값 최대폭 하락으로 농민들의 시름이 깊었다. 평창가농은 어땠나?

우리는 김치사업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해였지만, 농자재값이 너무 올라 고생했다. 이곳은 고랭지라 논이 없어 쌀값 폭락은 실감하진 못했지만, 같은 농민으로서 동지적 연대감을 항상 느낀다. 비단 쌀값만이 아니라 농민의 짐은 너무 무겁다. 동지적 관심이 늘 필요하다. 우리 분회에는 24개 농가 회원이 있다. 30~40대가 7가구, 나머지는 50대 이상으로 평창군 4개면에 걸쳐 농사짓는다. 가장 큰 목표는 농민들이 빚 안 지고 농사에 충실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최근 3년 동안 조합 매출액이 꾸준히 늘었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평창가농 설립 45년, 영농조합법인 설립 12년의 내공과 원칙 있는 운영으로 신뢰가 두터워진 덕분이다. 지난해 매출액 목표가 20억원이었는데, 12월말 기준 23억원 정도다. 처음 도전한 김치사업에서 20억원 성과를 냈다. 지난해에는 김장철에만 시도했는데 올해는 김치 품목을 더 늘려 연중 진행하려 한다.

김치사업은 매우 복잡해서 우리 힘만으로는 어려워 협업을 했다. 우리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회원들이 가능한 한 빚 없이 농사에 매진하도록 노력했는데 이를 신뢰한 성필립보생태마을이 판매 예약을 맡아줬다. 요리법 개발은 평창꽃순이김치회사(진부면)가 맡았다. 우리는 유기농 원재료를 조달한다. 우리만으론 부족해 다른 지역 교구와 협업해 계약재배를 한다. 각자 잘하는 분야를 맡아 세 주체가 손을 잡았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

판로가 고민인 농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 같다. 생산·판매는 어떻게 이뤄지나?

회원 농가의 생산비를 줄이고, 농사에 집중하도록 할 공동시설과 작업장이 중요하다. 부재료를 다듬는 공동작업장을 준비하고 있고, 손질 인력도 영농조합이 고용한다. 안정적인 농사를 위해 김치 예약 시에 소비자들에게 선도금을 받아 농민들에게 주고, 중간에 영농자금이 더 필요하면 중도금도 지급한다.

김치사업은 우리뿐 아니라 전국의 친환경 농가에게도 큰 판로가 된다. 올해는 회원이 아닌 평창군 친환경 농가와 강원도친환경농업협회와도 함께한다. 김치 재료가 워낙 다양해 전부 유기농으로 조달하기 어려워 주산지도 나눴다. 생강은 전주 봉강, 마늘은 단양에서 공급한다. 지역 가톨릭 교구 단위로 친환경 농가를 순회하면서 계약재배하고 수매한다. 전국적으로 친환경 농가들과 관계 맺으니 단지 우리 조합 사업만이 아니다. 전국 농가에 새로운 판로가 되고 개별적·산발적이 아닌 지역 교구를 단위로 한 조직적 연결이라 더 의미 있다.

판로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선도금이 있어 생산비 부담을 크게 덜겠다.

농사는 거름·모종 등 초기비용이 만만치 않다. 농가부채가 악순환인 이유는 초기비용을 오롯이 농가가 부담해서 부채와 이자가 늘기 때문이다. 가을 수확으로 갚을 수 있으면 다행이나 농사가 잘 안되거나 농산물값이 떨어지면 그 책임은 오롯이 농가 몫이다. 연초에 빌린 돈을 못 갚는다. 이것이 몇 년 쌓이면 도저히 살아날 수 없다. 그래서 김치사업 때도 빚지지 않도록 비용을 먼저 지원한 것이다. 있는 자금으로 농가가 빚을 덜 지도록 많이 고민한다. 이는 농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자 조합의 최고 역할이다.

생산뿐 아니라 소비까지 안정적으로 연결되는 것도 중요하다. 회원들의 농산물은 전부 조합이 판매한다. 연초 작기를 잡을 때 이를 고려해서 특정 작목이 많아지지 않도록 시기·품목·양을 서로 조절한다. 우리 농산물은 대부분 한살림 등 생협, 경기도 학교급식으로 나간다.

조합 운영이 안정적인 편이지만 어려움도 있겠다.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새로운 귀농인을 만날 기회가 없다. 귀농·귀촌을 알아보는 이가 많다지만 직접 우리가 접할 창구가 없다. 정부가 노력한다 해도 실제로 연결이 안 되니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지속해서 젊은 친구들이 들어와야 한다. 조직에 쌓인 전통과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물려받고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평창은 겨울이 빨리 오고 길다. 11~3월까지 다섯 달 동안 소득이 없다. 남쪽처럼 2~3모작이 안 되니 겨울 소득거리가 없어 어렵다. 축산을 많이 권장하지만, 축사 마련 등이 쉽진 않다. 안정적 판매를 위해 원주기업도시에 개설한 직매장과 서울 우리농 매장을 연결해 소고기를 정기적으로 판매하도록 시도하나 아직 안정 단계는 아니다.

평창가농은 사회적 기업으로서 지역사회 환원을 중요시한다. 이와 관련한 활동이 있다면?

지역공동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적 농업 차원의 지역 어르신 돌봄 사업이다. 평창가농·마을공동체·이웃마을·병원·복지기관 등 지역의 여러 자원을 통합한 체계적 돌봄을 마련하려 한다. 마을 노인들이 홀로 지내다가 결국 요양원에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어르신들이 자신의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임종할 수 있도록 마을공동체가 돌봄과 장례를 지원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농업환경보전 프로그램도 있다. 우리가 이왕 친환경농업을 하고 있으니 지역·주거환경도 친환경으로 바꿔 우리 지역을 청정지역으로 가꾸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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