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 따라 생활건강] 아토피와 온병학

  • 입력 2023.01.01 18:00
  • 기자명 박현우(경희도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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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우(경희도담한의원 원장)
박현우(경희도담한의원 원장)

면역력을 제일 이해하고 연구하기 쉬운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코로나 유행처럼 감염병이 유행하는 때입니다. 17세기, 400여년 전 기존의 한의학 처방들로 대응하기 어려웠던 감염병이 유행했습니다. 의사들은 이러한 감염병을 ‘온병(溫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온병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치료하는 온병학(溫病學)이 등장했습니다.

이후 200여년간 크고 작은 감염병들이 유행하면서 온병학도 같이 발전했습니다. 여러 의사들은 감염병의 증상들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원인이 무엇인지, 치료법은 무엇인지 연구하였습니다. 18세기에는 섭천사(葉天士), 설생백(薛生白), 오국통(吳鞠通), 왕맹영(王孟英)과 같은 온병을 잘 치료하는 명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200여년 전에 이르러 온병학은 ‘온병조변(溫病條辨)’이란 책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이 책에 나온 처방들은 이번 코로나에도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처방이 코로나의 인후통 증상에 효과적인 ‘은교산(銀翹散)’입니다. 은교산은 금은화와 연교, 길경, 박하, 우방자 등으로 이루어진 한약입니다. 온병 초기에 열이 나고 기침을 약간 하며, 인후통의 증상이 있고, 혀끝이 약간 붉으며 맥은 뜨면서 빠른(부삭맥, 浮數脈) 특징이 있을 때 사용하던 한약입니다.

온병조변은 은교산 뿐만 아니라 여러 훌륭한 처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훌륭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감염병의 증상을 아주 자세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관찰하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관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증상이 감염병의 어떤 단계인지 진단하고 치료법까지 밝혀 두었다는 것입니다.

온병의 진단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온병조변은 감염병을 진단할 때 우선 위기영혈(衛氣營血) 4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위분(衛分), 기분(氣分), 영분(營分), 혈분(血分) 순으로 병이 깊어집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기(邪氣), 즉 감염병이 ‘위분’에 들어가면 감염병의 초기단계입니다. 열이 나면서 춥습니다. 땀은 아직 나지 않고, 나더라도 약간 나며, 머리가 아프거나 약간 무겁습니다. 맥은 뜨고 빠르며, 혀끝은 약간 붉어집니다.

감염병이 ‘기분’에 들어가면 땀이 많이 나면서 체온이 올라갑니다. 또한 갈증도 심하게 납니다. 기침이나 천식, 가래가 생기고, 소화기능에도 문제가 생겨 구역질, 구토를 하거나 변비나 소변이 시원하지 않는 등 대소변에 문제가 생깁니다. 맥은 굵거나 튕기는 듯하면서 힘이 세지며, 혀가 아주 붉어지고 건조해집니다.

감염병이 ‘영분’에 들어가면 밤에 열이 심해집니다. 기분의 증상과는 달리 오히려 땀이나 갈증은 줄어듭니다. 가슴이 답답하면서 밤에 잠을 못자고, 잠을 자더라도 잠꼬대를 합니다. 피부에는 붉은 반점(발반, 發斑)이나 두드러기(발진, 發疹)가 생깁니다. 몸속에 진액이 손상되면서 맥은 가늘면서 빨라지고, 혀는 검붉은 색으로 변하며 설태가 생기지 않습니다.

감염병이 ‘혈분’에 들어가면 혈관의 손상이 일어납니다. 코피가 나거나 위장관에서 출혈이 생겨 피를 토합니다. 대변에 출혈이 생겨 대변색이 어두워지고, 소변에 출혈이 생기기도 합니다. 영분의 증상과 마찬가지로 잠을 못자고, 심하면 경련을 일으켜 팔다리가 뒤틀리거나 씰룩거립니다. 맥은 영분과 비슷하게 가늘면서 빠르고, 혀는 자줏빛 색이 되거나 피가 빠져 분홍빛이 되기도 합니다.

위분, 기분, 영분, 혈분은 차례대로 진행되기도 하고, 위분에서 바로 영분으로, 또는 기분에서 바로 혈분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한 번에 여러 단계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모든 단계에는 치료법과 처방들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은교산은 온병의 가장 얕은 단계, 위분증에 쓰이는 약입니다.

이외에도 온병학에는 삼초(三焦)진단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온병학은 구체적으로 아토피와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다음 칼럼에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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