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파독 간호사·광부④ 독일 간호사는 간호사가 아니었다

  • 입력 2023.01.01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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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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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병원에 가서 우리가 수행해야 할 일과를 설명 들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우린 분명 간호사로 갔는데 거기서 하는 일은 우리가 한국의 병원에서 하던 일하고는 영 딴판이었거든요. 아, 잘 못 왔구나….”

육칠십 년대에 서독에 갔던 간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간호사의 역할에 대한 양국의 인식 차이 때문에 몹시 당황했었다고 토로한다. 처음 베를린시립병원의 여자 당뇨환자 병실에 배치되었던 김순복 씨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거동이 어려운 중환자의 수발을 간호사가 다 하게 돼 있었어요. 소변 기저귀도 갈아 채우고 가래도 받아내고…특히 당뇨환자는 소변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잖아요. 한국 같으면 간병하는 가족이나 청소원들이 하는 일을 다 하라는 거예요. 주사기는 손에 잡아보지도 못하고.”

독일의 경우 보호자가 간병을 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모든 치다꺼리를 간호사가 도맡아 한다는 것이다. 김순복 씨는, 한국에서 간호사가 하는 일은 독일로 치면 거의 레지던트 의사가 하는 역할이라고 말한다. 수간호사와 신임 김순복 간호사가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자.

-이 쪽 병동 야간 근무자지? 오늘 목욕시켜야 할 환자가 몇 명인지 알고 있겠지?

-예, 수간호사님, 열여섯 명입니다.

-아침 여섯 시까지는 다 씻겨야 하는데 힘들지 않겠어?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수고하라구. 자, 야간 근무조 아닌 간호사들은 모두 퇴근해.

김순복은, 자신이 밤잠이 없는 편이어서 일부러 야간 근무를 자원했다는데, 이런저런 임무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은 환자를 씻기는 일이더라고 했다.

“다들 잠들어있는 새벽 두 시에 환자들을 씻겨야 해요. 제 몸무게가 55킬로거든요. 그런데 입원한 독일 여자들은 대체로 덩치가 커서 100킬로가 훌쩍 넘어요. 환자의 몸을 돌려가면서 씻겨야 하는데, 바닥으로 떨어지면 안 되니까 책상 같은 걸 침상 옆에 끌어다 대고 몸을 뒤집어서 씻고, 그 사이에 침대 시트도 바꾸고, 그런 다음에 그 무거운 환자를 낑낑대며 안아서 다시 침대로 옮겨 눕히고…. 우리하고 같은 일을 하는 독일 간호사들은 체구가 엄청 크고 힘도 세서 썩 어렵지 않게 환자를 들어 옮기거든요. 하지만 그들보다 못 한다는 소릴 들을 수는 없잖아요. 거의 사력을 다 해서 여섯 시까지 열여섯 명을 씻기고 나면 탈진상태가 돼요.”

간호사의 역할이 이러했으니, 한창 경제부흥을 구가하던 서독 사람들이 그 힘든 일을 기피했던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간호 인력을 요청했던 것이고.

아침 여섯 시에 퇴근한 김순복은 기숙사에 들어오자마자 옆방 벽을 두드려서는, 주간 근무조로서 아직 출근 전인 동료 이상순을 부른다.

-내 다리 좀 주물러 줘. 쥐가 나서 아파 죽을 지경이야.

-똑바로 누워봐. 아이고, 다리라고 뼈만 앙상해가지고…. 기집애야 귀찮아도 끼니를 좀 제 때 제 때 챙겨 먹어. 이렇게 삐쩍 마른 몸뚱어리로 덩치가 산만한 독일 간호원들한테 지지 않겠다고 밤새 버둥거렸으니 쥐가 안 나고 배기겠어.

-아, 우리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에다 쌀밥 한 그릇만 먹어봤으면 원이 없겠다.

-엄마 얘기는 또 왜 꺼내냐, 눈물 나게.

“어쩌다 엄마 얘기, 고국 얘기 나오면 또 둘이 부둥켜안고 우는 거지요. 부모도 곁에 없고 밥해주는 사람도 없고. 하루는 수제비가 먹고 싶어서 밀가루 반죽을 했는데, 엄마가 해주는 것만 먹어봤지 언제 해봤나요? 그래서 물을 끓이지도 않고 반죽을 찬물에다 뜯어 넣고 무슨 양념인가를 했는데…그게 뭐가 되겠어요. 그 뒤부터 친구들이 막 놀려요. 야, 강원도 음식 중에는 참 별난 수제비도 다 있더라, 하고….”

김순복 씨는 30여 년 저편의 옛일을 들려주면서 목이 멘 듯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가 ‘강원도 수제비’ 운운하면서는 또 금세 함박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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