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쁘잖여!” 고향마을 아줌니, 꽃 피워 올린 그 열정으로

  • 입력 2023.01.01 18:00
  • 수정 2023.01.01 19:20
  • 기자명 정은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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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작가. 농촌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등을 썼다. 농촌과 먹거리, 자영업 문제를 주제로 일간지와 매체에 글을 쓰고 있으며 라디오와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농촌과 음식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정은정 작가. 농촌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등을 썼다. 농촌과 먹거리, 자영업 문제를 주제로 일간지와 매체에 글을 쓰고 있으며 라디오와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농촌과 음식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신 그해에는 산소 근처에서 시묘살이라도 살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근처에 들를 일이 있으면 혼자서라도 산소에 들렀다. 하지만 이제는 여름에는 풀도 무섭고, 겨울에는 쌓인 눈이 무서워 이래저래 띄엄띄엄이다. 무엇보다 세월이 한참 지나 또렷했던 슬픔도 곰삭아 형체도 흐물흐물해져 버려서다. 그래도 아버지나 오빠가 가면 나들이 삼아 가끔 따라나선다. 엄마의 음택이 있는 충북 음성군은 아버지의 고향이자 내 본적지다. 큰아버지가 할머니 모시고 오래도록 고향을 지켰으므로 지금은 귀물처럼 되어버린 ‘시골 할머니댁’, ‘시골 큰집’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복락이었다.

이렇게 눈이 많을 때는 비료부대에 지푸라기를 부려 넣어 언덕배기에서 ‘육초’를 탔다. 타고 내려오는데 딱 6초 정도 걸린다 해서 고향 동네에선 그렇게 불렀다. 도시로 와서 가장 어이없던 일이 눈썰매라 부르는 ‘육초’를 타는 데에도 돈이 든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돈과 맞교환을 이루는 세계가 도시의 삶이었고, 농촌도 다를 바 없어졌다. 여하튼 여름에는 사촌들과 등껍질이 벗겨지도록 개울가에서 놀고, 겨울엔 손등이 얼어 터지도록 놀았다. 하여 성묘 간 길에 큰집에 들르는 일은 그 시절 추억을 고갱이 삼는 나들이에 가깝다.

큰집엔 팔순을 다섯 해나 넘기신 큰어머니와 개 두 마리가 산다. 아직 큰엄마가 계시니 들를 곳이 남은 셈이다. 산 사람이 있어야 고향일 텐데 이제 큰엄마마저 떠나시면 더욱 가볼 일이 없을 것이다. 조카 노릇 한다고 용돈이라도 조금 찔러 드리면, 어릴 때 귀찮게 해드린 보람이라도 느끼셨으면 한다. 엄마는 방학만 되면 큰집에 가는 것을 은근 반겼다. 돌봄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는 그 시간이 홀가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한갓진 행복도 잠시, 큰집 사촌들이 바로 올라와 금방 깨지곤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땅이 있어 농사를 이어간다. 꽃 진 자리에 열매 맺는 일이 신통방통하여 농사를 짓는다. 누가 하란다 해서 하고, 하지 말란다 해서 접을 수 없는 것이 농사요, 농민이다. 사진은 한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황화 코스모스. 한승호 기자
그래도 땅이 있어 농사를 이어간다. 꽃 진 자리에 열매 맺는 일이 신통방통하여 농사를 짓는다. 누가 하란다 해서 하고, 하지 말란다 해서 접을 수 없는 것이 농사요, 농민이다. 사진은 한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황화 코스모스. 한승호 기자

“꽃 귀경(구경)다녀 왔어.”

지난 초여름 오랜만에 성묘를 하고 큰집에 들렀다. 그런데 개만 요란하게 짖어댈 뿐 집이 비었다. 제법 뜨거워진 초여름 햇볕에 한낮에는 논밭에 사람 하나 없건만 상노인이 어디 가셨으려나. 에어컨 바람이라도 쐴 수 있는 마을회관에 계실 공산이 크다. 하지만 마을회관도 적막하다. 오랜 집성촌이어서 촌수 따져 머리가 ‘호호할머니’여도 이미 옛날 양반이 되어버린 남편이 나와 항렬이 같아 ‘아줌니(올케)’라 부르라 하던 꼬장꼬장한 동네, 인근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그나마 젊은 축에 들었던 주민들이 다 빠져나가 완벽한 노인마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날 따라 아줌니들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회관에서 나눠 잡수시라 들고 간 자양강장제 한 박스만 밀어 넣고 돌아섰다. 덜컥 겁도 났다. 조카들 온다고 혹시 풋고추라도 따러 갔다가 지난번처럼 허리 뚝! 해서 고꾸라지신 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괜히 우리가 들러 큰엄마만 다쳤다며 사촌 언니들이 눈이라도 흘길 일 만들지 않을까, 쓸데없는 근심까지 보태면서 큰엄마를 찾아다녔다.

때마침 다리 건너 ‘개오개 마을’에서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점묘화의 점처럼 천천히 찍히면서 건너오고 있었다(‘개오개’는 작은 고개를 뜻하는 ‘개고개’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속 답답한 오빠가 차를 끌고 가 모두 태워 후딱 모셔왔다. 동네에 낯선 기척이 느껴지면 집집이 개가 짖어대니 어느 집에 누가 오고 가는지 어차피 들키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한데 모여 수박 한쪽이라도 함께 나눠 먹고 헤어지는 절차가 필요하다.

농촌에서 친근감의 표시이자 적당한 호칭이 없어 ‘어머님’, ‘아버님’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머님’이라 불렀더니 역시나 큰엄마가 “아줌니여”라며 바로 고쳐주신다. 족보를 꼬아서는 안 될 일이지 암만. 다들 무슨 재미난 일이 있어 다녀오시는 길이냐 여쭈니 “꽃 귀경(구경)다녀 왔어.” 하신다. 개망초꽃부터 찔레까지 온 동네가 꽃 천지건만, 무슨 꽃 구경을 하였는지 물으니 개오개에 선인장꽃이 피어 모두 구경 다녀오는 길이라 한다. 천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도 아니고 겨우 선인장꽃이라니!

행사에 갔다가 ‘다육이’라 부르는 선인장 화분을 기념품으로 받아왔고, 집집마다 몇 개씩 놓아두게 되었다. 다육식물은 물도 많이 줄 필요도 없고 도시 실내환경에 적합해 인기 화훼작물이다. 같은 날 받아온 다육이를 어떤 아줌니는 마당에 두었고, 또 누구는 텔레비전 위에 두었고, 얘도 생명인데 화분에서 얼마나 답답하겠느냐며 아예 마당으로 옮겨 심은 아줌니도 있었다. 큰엄마는 봉당에 다른 화분들과 함께 두어 길렀다.

하나 한날한시에 받아왔건만 왜 개오개 아줌니네만 꽃을 피웠나 궁금해서 다녀왔다고 한다. 아침부터 “성님 선인장에 꽃이 폈어유!” 하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자랑을 늘어놓았을 개오개 아줌니를 생각하니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여 웃음이 났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마는 꽃이 선인장꽃이라 마음이 급해 구경에 나섰다. 하지만 허리다리 멀쩡한 양반들이 없어 보행기 밀고 가느라 마음만 급할 뿐 걸음은 느렸다. 돈 있으면 인공관절 해서 넣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휘면 휜 채로, 꺾이면 꺾인 채로 파스와 진통제로 버티며 산다. 와중에 오빠 차를 타고 휘하니 오니 다리 쉼을 하여 참 좋다며. 그리고 내도록 선인장 이야기꽃을 피워 올렸다.

각자 농사 달인의 훈장을 받아도 모자라건만 왜 자기 다육이는 꽃을 안 피우는지 은근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듯도 하였다. 그래서 어찌 키웠길래 꽃을 먼저 피웠는지 그것도 궁금했던 차였다. 큰집 마당에는 개죽 쑤는 아궁이 옆에 왕달맞이꽃과 분홍달맞이꽃을 잔뜩 심어 놓았다. 몇 년 전 관상용으로 씨앗을 사다 뿌렸다는데 알아서 해마다 피고 진다. 밭둑에도 흔하게 피는 달맞이꽃까지 키우는 큰엄마의 심연을 알듯 말듯하다.

큰엄마는 예쁜 것들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행사용 화환에서 거베라나 백합을 뽑아와 집에 꽂아두기도 한다. 창호지 문에 말린 꽃이나 단풍잎을 함께 발라 넣었다. 무장아찌에 식용색소를 넣어 일본 단무지처럼 노랗게 만들기도 했다. 오로지 예쁘기 때문에 그랬다. 지긋지긋하게 고추를 따야만 하는 고추 주산지에서 ‘멕시코 고추’라 부르던 관상용 화초고추를 따로 애지중지 길렀다. 종일 고추를 따고 와서도 꽃고추를 보듬는 일에 큰아버지 눈치를 보아야 했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쓴다며 냅다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방에 화분을 들여놓아 발에 치인다며 큰아버지는 더 열불을 냈다. 하지만 그때마다 큰엄마의 대답은 달맞이꽃처럼 환하고 고추처럼 맵고 진했다.

“이쁘잖여!”

예쁘다는 그 한마디. 아름다움이란 본래 이렇게 간단명료한 것인가 보다. 땅을 일궈 어떻게든 소출을 내서 이쁜 것, 고운 것들은 현금 만들기 위해 내다 팔고, 가장 못난 것들만 건져 먹었던 시간들을 그 누가 알아주었을까. 돈도 안 되고 먹을 수도 없는 아름다움이 늙은 여인들의 마음을 안아주고 웃음 짓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쁜 것(특등급 농산물)’ 만들려면 가차 없이 꽃을 솎아내는 일이 농사다. 꽃 보자고 농사를 짓지는 않는다. 꽃농사인 화훼농업도 꽃 볼일이 없다. 꽃봉오리 맺기 시작하면 부지런히 잘라 판다. 오로지 보고 먹을 사람 위주로 돌아가는 일이 농업이다. 그래서 개오개 마을 선인장꽃 피던 날은 매우 귀한 날이었다. 선인장꽃만큼은 빼앗기지 않고 기른 이들에게 주어지는 온전한 아름다움이었으므로.

계묘년 새해, 농사는 이미 시작됐다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검은 토끼의 해인 ‘계묘년’이라 한다. 지혜와 풍요의 상징인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풍요로운 한 해를 맞으라며 새해 덕담이 오고간다. 토끼는 다산의 동물이기도 하고 별주부(자라)에게 속지 않고 오히려 용궁 구경 실컷 하고 산해진미 얻어먹은 뒤 뭍으로 무사히 살아 돌아오는 똘똘한 녀석이기도 했다.

하나 2023년 우리 농업과 농촌을 향해 풍요로운 한 해를 기원하며 맘 편히 새해 복 많이 받으라 수인사를 나눌 형편은 아니다. 농촌에서 다산은커녕 출산 소식을 언제 들었는지도 까마득하다. 용궁의 주인은 간도 빼앗고 쓸개도 뺏더니 이제 가죽까지 벗기려 든다. 쌀농사마저 그만 지으라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올해 농민들의 신수가 훤할 리는 만무하고 외려 검은 토끼털처럼 어두울 것이다.

여기에 보태 아름답고 예쁜 것들을 돈과 간단히 바꿔 먹는 일이 당연한 세상이다. 예쁘면 예뻐서 의심하고 못생기면 못생겨서 값어치를 낮게 치는 일이 농업이다. 세상의 변죽에 적응하기도 어렵고, 농사 포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유혹도 많지만, 그래도 땅이 있어 농사를 이어간다. 평생 하던 일이어서 이어가고 꽃 진 자리에 열매 맺는 일이 신통방통하여 농사를 짓는다. 누가 하란다 해서 하고, 하지 말란다 해서 접을 수 없는 것이 농사요, 농민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묻던 시인 신경림처럼 고향마을 아줌니들이 묻는다. 가난하다고 해서 아름다움을 모르겠는가! 꽃을 심고 가꾸는 그 마음, 끝내 선인장 가시를 뚫고 꽃을 피워 올리는 그 재주가 당신들을 먹여 살리지 않았느냐고, 이미 봄에 뿌릴 씨앗은 벼려 놓았고, 비닐하우스에 모종이 길러지고 있다고, 당신들은 절대 이 열정을 말릴 수가 없다고.

※ 새해 신년호부터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 농업·농촌·농민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정은정 농촌사회학자의 원고가 격월로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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