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파독 간호사·광부③ 두고 온 고국의 가족을 위하여

  • 입력 2022.12.25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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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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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생인 김순복 씨가 150명으로 구성된 파독 간호사 팀의 일원으로 김포공항을 떠나 서독으로 향했던 때는, 1970년 5월이었다. 4년 전에 떠났던 하영순 씨와는 달리, 김씨는 한국과 서독 사이에 체결된 국가 간의 협정에 따라 출국한 케이스였기 때문에, 해외개발공사의 주선으로 출국절차를 밟았다.

양쪽 모두 서독으로의 간호인력 수출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으나, 독일 민간인의 주선으로 갔던 하영순 씨가 3년 동안 월급에서 항공료를 분할 공제했던 데 비해서, 김순복 씨는 국가에서 제공한 여객기를 타고 갔기 때문에 항공료를 부담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달랐다.

“강릉간호학교를 졸업하고 도계에 있는 대한석탄공사 부설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웠어요. 아버지는 중풍으로 누워 계셨고, 막내 남동생이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는데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지요. 다른 것 생각할 겨를 없이 우선 월급을 많이 준다니까, 동생 학비 벌려고 간 거지요. 그때 스물두 살이었어요. 에어프랑스를 타고 갔는데, 직항이 아니라 알래스카의 앵커리지 공항을 경유해서 가야 했기 때문에, 베를린 테겔공항까지 꼬박 열두 시간이나 걸렸어요.”

공항에 도착하자 석 대의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자, 1번 버스에 52명, 2번 버스에 50명, 그리고 3번 버스에 48명이 타면 됩니다.

미리 정해놓은 인원수만 맞추어서 세 팀으로 나누어 태우더니, 그 석 대의 버스들은 각각 방향을 달리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삽시간에 절친한 친구와 헤어지고 마는 경우도 있었다. 각 병원의 수요에 따라서 인원수를 미리 할당해 두었다가, 인적사항은 무시하고 그 숫자만 맞춰서 태우고 갔던 것이다. 버스가 교외로 빠져나가자 창밖을 내다보던 간호사들이 불안한 표정을 하고 수군거렸다.

-야, 저기 좀 봐, 사방이 보리밭하고 밀밭이야.

-병원에 갈 거라면서 왜 시내를 빠져나와서 시골길로만 한정 없이 달려가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저 사람들, 혹시 우리를 동독으로 데리고 가는 것 아닐까?

-뭐라고? 큰일 났다. 동독으로 데리고 갔다가 북한으로 보내버리면 어떡해?

3년 전인 1967년에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고, 출국 전에 반공교육을 단단히 받았던지라, 행선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버스에 앉아 있자니 겁부터 나더라고 김순복 씨는 얘기한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도 넘게 달리더라고요. 안내해 주는 사람도 없어서 모두 불안에 떨었어요. 우리는 그저 베를린이 동서로 갈라져 있다는 말만 들었지 그 경계가 어딘지도 몰랐고, 자칫 방심하면 북한 사람들한테 낚여서 동독을 거쳐서 평양으로 잡혀간다더라, 뭐 그런 황당한 얘기들을 주워들었으니까.”

버스가 섰다. 베를린 외곽의 한 시립병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김순복 일행이 배치된 그 병원에는 서른다섯 명의 한국인 간호사들이 먼저 와서 근무하고 있었다.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긴장과 공포가 봄눈 녹듯 사라졌다.

자, 그렇다면 그렇게 서독으로 건너간 간호사들은 그 낯선 상황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일차적인 난관은 언어소통 문제였다.

“제가 처음 배치된 곳이 베를린시립병원의 여자 내과 당뇨병 병실이었어요. 말이 안 통해서 막막했지만 우리가 누굽니까. 한국 여자들, 눈치 하나는 비상하잖아요. 수간호사를 죽어라 따라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병실 분위기를 익히고, 손짓발짓으로 환자하고 소통을 하는 한편으로, 근무가 끝나면 어학당(‘괴테 인스티튜트’)에 가서 하루 세 시간씩 악착같이 독일어를 배우고…. 두고 온 고국의 가난한 식구들을 생각하면 무슨 일을 못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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