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이대로는 더이상 못 짓겠다

  • 입력 2022.12.25 18:00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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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독 식량위기와 기후위기, 장기화된 코로나19, 전쟁위기까지 악재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1년을 보냈는지 평가하고 내년에는 무엇을 준비할지 계획을 세워야 하는 시기다.

숨 가빴던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 지난 2월 14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 500여개의 나락 톤백을 적재하면서 2021년 말부터 요구해온 시장격리를 늦장 실시하고 최저가 입찰 역공매 방식을 적용한 정부의 과오를 규탄하는 집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당시 집회에서는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전국쌀생산자협회·한국들녘경영체중앙연합회·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가 한마음으로 연대해 농업 홀대와 농업 무시로 일관하는 보수 양당을 규탄하고 생산비가 보장되는 공정가격에 매입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또 수확량이 3% 늘어나거나 가격이 5% 떨어지면 시장격리를 자동으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을 요구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올 한 해 농업계 주요 이슈를 살펴보면 코로나19로 야기된 농촌 인력난 해소 문제와 폭등한 인건비 대책 촉구, 폭등한 농자재값(비료 200%·면세유 103%·각종 농자재 36.4% 이상) 대책을 요구했으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조생 양파값 폭락 대책을 촉구한 투쟁들이 이어졌다. 마늘 TRQ 수입발표와 창녕 마늘 도매시장 경매 중단 사태나 45년 만에 최대치(24.9%)로 폭락한 쌀값 대책과 양곡관리법 개정 촉구 문제, 배추값 폭등·폭락 대책, 금리 폭등과 중앙회장 셀프 연임 목적의농협법 개정 찬반 논쟁 등 하나하나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사안들이었다. 농민들은 수시로 서울과 정부세종청사로 모여 한목소리로 요구했으나 어느 것이든 시원하게 해결된 것이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

농민들의 요구는 왜 번번이 공허한 메아리가 됐는지, 농민은 진정 농정의 주인이 되면 안 되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농민은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의 가격을 결정할 수 없다. 생산비가 아무리 폭등해도 이를 반영한 값을 받는 일도 없다. 농업에 공익적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농민은 언제까지 빚더미에 올라야 하는지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

농민과 같이 공익적 기능을 하는 한국전력공사는 원가가 인상돼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전기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며 올해만 해도 네 번이나 요금을 인상했고 내년에도 한 차례 더 인상할 계획을 밝혔다. 같은 맥락으로 농민들도 생산비가 너무 올라 감당할 수 없고 농산물값은 폭락해 대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으나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외치는 요구마다 묵살 당하다 보니 농민들은 볏가마를 서울로 끌고 올라와 대통령실 앞에,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나락을 뿌려대며 항변하는 것이다.

올해 농사를 지었던 농민들 중에서 미래를 꿈꾸는 이가 과연 있을까 반문해 본다.

하지만 2023년 1월 1일 희망에 찬 새해에는 변함없이 해가 뜰 것이고 농민들도 ‘바꿔보자’는 요구를 담아 또다시 목소리를 높일 것이 분명하다. 올해 쌀값 폭락 문제를 지난해로부터 넘겨받았으나 내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비록 같은 내용을 웅변한다 해도 깊이는 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상정 문턱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정부와 언론, 연구자, 정치인들은 양곡관리법 개정 문제에 농민단체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찬반이 갈린다며 갈등상황을 전파하고 있다. 또 쌀에만 지원하다 보니 시설 및 타작물에 형평성이 어긋난다고 편을 나누기도 한다.

한 해의 끝에 누구는 한 살 더 먹게 돼 서럽다고 말하지만, 농민들은 연말 농자재값·대출금 상환과 폭등한 이자에 서럽다. 다가오는 2023년 계묘년에는 토끼의 큰 귀처럼 대통령이 농민들의 목소리를 잘 듣고 불통의 정치가 아닌 소통의 정치를 펼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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