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60] 더 추운 연말

  • 입력 2022.12.25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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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연말이 되자 연일 추운 날이 지속되고 있다. 영동지역은 대체로 영서보다 기온이 4~5℃ 높아 비교적 따뜻하지만 바람이 세게 불어 체감온도는 비슷할 것 같다. 그런데 올해 말에는 이곳 영동지역도 영하 10℃ 이하로 떨어지는 한파주의보가 자주 발령되고 있어 매우 춥다.

농장의 사과나무들은 잎을 다 떨어뜨린 앙상한 가지에 여름부터 키워 온, 내년에 꽃피울 꽃눈과 잎눈들을 매단채 모진 추위와 바람을 견디며 긴 동면에 들어간 듯 조용하다. 그러나 사과나무는 현재 춥고 힘들지만 봄이 오면 꽃 피우고 열매 맺을 희망을 품고 있다. 이렇게 희망이 있기에 나무도 계절이 가져다주는 추위쯤은 어떻게든 견딘다.

농부들도 마찬가지다. 희망을 품고 견디는 나무들이 있기에, 가을 수확이 끝나면 간절한 마음으로 내년에도 나무들이 잘 자라서 열매도 많이 맺으라고 퇴비도 주고 유기질 비료도 뿌려 주며 전정도 해 준다. 무엇보다 나무들이 희망의 끈을 내려놓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날씨가 너무 춥고 병충해 발생도 너무 심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해 나무 스스로 고사하면 어쩌나 싶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문득 사과나무를 우리의 농민들이라 가정하고 농부를 위정자들이라고 비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의 농민들, 아니 전 세계의 농민들과 중소규모 가족농들은 농촌을 지키고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매섭게 추운 겨울보다 더 추운 개방화와 탈식량주권의 시대를 견디며 버티고 있다. 상업적 시각으로만 접근하는 경쟁력 지상주의와 자본의 논리에 함몰된 농정에 포위돼 있으면서도 농민의 권리와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이러한 농민들의 수고와 간절함을 숭고히 여기고 자긍심을 높여 주며 정성 어린 정책으로 도와주고 지원해 주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이들은 아예 관심도 없고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최근 대통령이 농민들에게도 수입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한 농가공제품을 선물로 보냈다는 뉴스를 접하고 많이 착잡했다. 한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자들이 이 정도의 감수성과 저급한 상황인식을 가진 자들인가 싶기 때문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인간의 먹거리를 생산하고 자연과 환경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농부들에게 비수를 꽂는 행위인지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자들이 무슨 나라를 통치하겠다고 하는지 한심하고 개탄스럽다.

사과나무가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듯이 농민이 없는 농업·농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날씨가 추운 것보다 더 추운 것은 마음이 추운 것이 아닐까.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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