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촌에 농촌다움을 강요하지 마라

  • 입력 2022.12.25 18:00
  • 기자명 이한보름(경북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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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보름(경북 포항)
이한보름(경북 포항)

지난 11월 8일. 국회에서는「농촌 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의 입법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기 전 관계 기관과 전문가의 자문을 수렴하기 위해 개최된 공청회에서는 농촌의 난개발을 막고 지역소멸에 처한 농촌의 위기를 타계하기 위한 방안의 필요성에 대부분 공감하였다. 이를 위해 농촌 공간의 체계적인 관리와 재생이 필요하며 농촌 공간의 재구조화를 통해 일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상당부분 공감을 하였다.

농촌 공간 재구조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기에 앞서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농촌공간정비 사업을 시범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21년 시범지구 5개소를 거쳐 2022년부터 매년 40개소씩 10년간 400개소를 정비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는데, 주요 내용을 보면 농촌 주거지 인근의 유해시설을 철거 이전하도록 지원하고, 유해시설을 정비한 부지를 생활서비스 시설, 주거단지, 마을공동시설 등으로 활용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유해시설을 제거한 농촌은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말 그대로 농촌다운 농촌으로 탈바꿈할 것이고, 도시민들에겐 편안한 휴식공간을, 농촌 사람들에게는 살고싶고 머물고 싶은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도시민들이 방문하고 싶고, 농촌에 사는 농민들이 머무르고 싶은 농촌을 만들려면 우선 농촌에 사람들이 살 수 있어야 하고,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농촌 유해시설로 지정되어 정비되는 공간들을 보면 농촌 경관을 해치는 시설이지만, 농촌에서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중요한 수익을 제공하는 시설이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실제 농촌공간정비 사업에 선정된 32개소 사업(2011년 9월 기준) 중 축사가 27개소로 가장 많고 그밖에 빈집 10개소, 공장 7개소, 폐창고 4개소 순이다. 농촌에서 가장 높은 소득원인 축사 정비가 사업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촌 풍경은 선진국, 그중에서도 유럽이나 일본의 시골 풍경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해외여행이 일상화되면서 국민들의 시골에 대한 기대치가 과거와 달리 상향평준화 되었으나, 우리 농촌의 모습은 선진국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수십년간 변화해 왔다. 아름다운 풍경과 오랜 전통을 간직한 채 시공간이 정지된 모습의 선진국과 달리 냄새나는 축사가 농촌 곳곳을 점령하고, 폐허에 방치되거나 노후된 공장과 빈집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선 모습이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그러나 농촌에 농지가 줄고 축사가 늘고 있는 이유는 농촌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합리적 선택지로 사람들이 움직이기 때문이란 걸 인정해야 한다, 단순히 축사를 외곽지역으로 옮기거나 없애는 사업이 아닌 새로운 선택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 농촌을 농촌답게 만드는 올바른 첫걸음이 될 것이다.

농촌을 아름다운 풍광으로 정비하고자 함에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흉물스런 모양의 축사는 아름답게 재설계하고, 축사에서 발생하는 냄새를 포함한 다양한 오염원들을 신재생에너지로 활용하는 사례들이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농촌에 농촌다움을 강요하지 마라. 일자리가 있고 산업이 있어 사람이 살 수 있는 농촌을 허하라. 아름다운 농촌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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