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2022년을 살아낸 농촌은 지금

  • 입력 2022.12.18 18:00
  • 기자명 정영이(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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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이(전남 구례)
정영이(전남 구례)

어느 해인들 곡절 없이 여유로웠던 세월이 있었을까만 2022년 한 해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울화통이 차오를 때가 많았다. 심지어 지금이 2022년이 맞는지 실감이 나지 않고 역사가 거꾸로 훌쩍 거슬러 간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것만 같다.

가끔 SNS에서 과거의 오늘을 소환해줄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2015년의 기억은 올 한 해와 거의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였던 것 같다. ‘이대로는 못살겠다!’라는 구호를 들고 전국의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 빈민, 여성 등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었다. 여성농민들도 전국을 순회하며 농정개혁 과제를 들고 의견을 모으며 11월에 서울에서 모이는 것을 결의해 나갔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변화의 의지들이 모여 만들어낸 민중총궐기 대회의 현장에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지셨다. 이후 2016년 1년여의 병상 투쟁 끝에 돌아가신 그날까지 멈춤 없이 하루하루를 세상을 바꾸기 위해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시고 부검을 하겠다는 정부와 경찰에 맞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사수했던 하루하루는 분노한 국민들을 단결하게 했고 촛불항쟁의 도화선이 되고 밑불이 되었다. 격세지감, 2022년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고 농민과 노동자 빈민들의 절규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15년의 구호에서 한 치의 벗어남이 없이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하라!’는 구호를 다시 들고 그해 11월처럼 서울의 거리로 새벽길을 나선다.

쌀값은 농민값이라고 한다. 역대 최저치의 하락세인 쌀값은 농업과 농촌, 농민을 대하는 우리 사회와 정부의 철학과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공공비축미는 비상시를 대비해 정부가 매입하는 쌀로 농가소득 지지와 수확기 물량 흡수, 식량안보 등이 본 역할인데 올해 역대 최저치 쌀값 폭락으로 2022년산 공공비축미 가격도 지난해보다 12%가량 하락할 것이라고 한다.

작년부터 현장의 농민들도 예견하고 대책을 세우라고 제시한 대안들은 콧등으로도 안 듣고 남의 다리만 긁다가 애먼 농민들만 잡은 꼴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나락가마를 둘러메고 상경한 날이 몇 날이며, 도로에 뿌려댄 나락이 곧 참담한 농민들의 심정임을 알기나 하는지 묻고 싶다. 비료, 퇴비, 인건비, 유류비 상승 등으로 농업생산비 부담은 늘어만 가는데 근본적으로 생산비를 보장하는 양곡관리법으로 개정하라는 농민들의 요구가 정치권에서 이념갈등 논쟁으로까지 번지는 현실은 ‘천불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1년 내내 가뭄에 시달린 올 한 해. 예측이 어려운 이상기후로 농사가 들쭉날쭉이고 각종 감염병이 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전 세계가 전쟁의 위기 앞에 자유롭지 못한 시대에 식량주권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농업의 근본적인 대전환을 위해서는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 이미 농민들의 손으로 짧지 않은 시간 농촌 현장 곳곳의 의견을 수렴하여 국민동의 입법청원 운동을 거친 법안이 제시되었으니 국가책임 농정의 물꼬를 터주기를 바란다.

기름값 상승과 전기요금 인상으로 겨울농사가 두렵다는 농민들의 하소연과 넋두리를 지금처럼 무시하다가는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는 경고를 안할 수가 없다. 다 참아도 배고픔은 참지 못하는 국민들의 먹거리를 수입에 의존해 버티는 것은 식량위기를 자초하는 것임을 제발이지 무겁게 받아안아야 한다.

빈부의 차이와 양극화의 문제가 일상 곳곳에 파고들어 상대적인 박탈감이 극에 달하고 있는 농촌에서 첫눈이 내리고 된서리가 내린 날 아침. 귓전에서 왱왱거리는 뉴스가 더욱 몸을 움츠러들게 하고 곧 분노로 이어진다. 긴 가뭄 탓에 실속없는 배추와 무를 뽑아 김장도 했고 긴 겨울을 날 먹거리 준비를 해놓고 물가인상의 주범으로 둔갑한 농민들은 또 새로운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결심을 하며 대문을 열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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