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식량안보와 식량주권

  • 입력 2022.12.18 18:00
  • 기자명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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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식량자급률’은 ‘사람이 먹는 곡물에 대한 자급률’이고 곡물자급률은 ‘사람과 가축이 먹는 곡물에 대한 자급률’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5.8%이고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0.2%에 불과하며, 특히 쌀 이외 밀·대두·옥수수는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식량자급률 100% 달성을 위해서는 국산 곡물이 가격과 생산량 측면에서 수입산 곡물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제약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현재「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제14조에 따라 5년마다 식량 및 주요 식품의 적정한 자급목표 및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장기적으로 국산 곡물이 수입산 곡물을 품질·가격 측면에서 점점 대체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곡물류는 과거 수매제를 운영했으나 WTO 감축대상보조(AMS)에 해당돼 AMS 한도에 따라 수매량을 축소했다. 이로 인해 수급안정 등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이에 2005년 쌀을 기점으로 2011년 옥수수, 2012년 보리, 2014년 콩 등 점차 수매제를 폐지하고 쌀과 콩은 공공비축제로 개편한 상황이다.

곡물, 채소, 과일 등에 대한 포괄적인 공공수급제 도입은 AMS에 해당하기 때문에 AMS 한도 제약 등으로 인해 정책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현재 주요 곡물(쌀, 밀, 콩)은 비상시를 대비해 비축 중이고, 주요 채소 품목(배추·무·마늘·양파 등)은 자급률이 80% 이상인 점 등을 고려할 때 공공수급제 도입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가속화되는 감염병위기, 기후위기, 전쟁위기, 식량위기 속에서 궁극적인 식량주권 실현을 위해서는 △식량자급률 목표를 100%로 설정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매년 적극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주요농산물 생산량의 50% 이상에 대해서는 계약재배를 통해 적정가격을 유지하고 생산량을 확보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수확기에 주요농산물의 적정량을 매입하는 공공수급제도는 안정적인 생산과 판매를 가능하게 하여 자급률 증대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식량안보적 측면에서 국민들이 필요한 식량을 어느 나라에서 사든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식량을 수출하는 나라 입장에서 전쟁이나 감염병, 기후위기로 언제든 수출을 하지 않아도 역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식량을 수입해 먹는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항상 저렴한 가격에 식량을 구입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영구히 보장돼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식량자급률을 올리기 위한 계획만 세울 일이 아니고 계획 대비 실행률이 떨어지면 이를 강제할 수 있도록 하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식량자급률이 50% 미만이 되고 곡물자급률이 20% 미만이 된 것은 그동안 자급 목표에 도달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이 자급률은 계속 떨어질 것이다. 계획보다는 실행을 강제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자급률을 올릴 수 있는 3요소는 농지, 인력, 생산비 보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가지가 법과 제도로 보장될 때 농업은 지속성을 갖는다.

올해 조생양파의 가격 폭락, 만생종 양파의 회복, 여름·가을 배추 가격의 폭등과 김장·월동배추 가격의 폭락, 쌀 등 농산물의 생산비 폭등과 가격 폭락은 더이상 농사를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쌀을 자동시장격리하는 양곡관리법이 개정되면 많은 농민들이 쌀농사로 몰려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한 계약재배를 통해 생산비를 보장해주면 그 작물의 생산이 늘어난다고 전망한다.

정부의 논리를 대입해보면 쌀 자동시장격리제와 공공수급제는 자급률을 올리는 훌륭한 방법으로 여겨진다. 최근 ‘농업이 위기다’라고들 많이 얘기하고 있다. 농업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회생할 수 없는 시기가 온다고도 얘기한다. 그것을 극복하고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선 국가가 책임 농정을 실천해 자급률을 올릴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해 실행해야 하고, 덧붙여 공공수급제 등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제 식량안보라는 이름으로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세계 곡물 시장에 의지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식량위기를 체험할 것이다. 식량주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자급률을 높여가는 방식만이 농업의 지속성을 담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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