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㉑] 추워도 따뜻한 시장, 대야 오일장

  • 입력 2022.12.18 18:00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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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어떻게 만드셨냐고 여쭙자 뉴슈가는 넣지 않고 사카린을 넣었다고 말씀하셨다. 내 기억이 그런 것이지 어쩌면 반대로 말씀하셨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사카린이든 뉴슈가나 신화당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라 단무지와 무짠지와 울외장아찌를 하나씩 사본다. 곱게 화장하고 멋진 모자까지 챙겨 쓰신 콩나물할머니가 사진을 찍으라며 나를 불러 세우셨다. 그렇게 나눈 대화에서 시작된 전북 군산 대야오일장에서의 첫 구매는 달고 짠 장아찌류였다. 소금에 절인 무 한 켜 깔고 정종술지게미에다 이것저것 넣은 양념 한 켜 얹기를 반복해서 팥시루떡 찔 때랑 같은 방법으로 해놓고 큰 다라이(할머니 표현)를 올리고 호스를 끌어다 물을 틀어 물로 눌러 놓으라고 아주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치자황색소에 고추씨까지 드문드문 박힌 단무지를 아마 내가 해볼 일은 없을 것이다. 맛이 궁금하고 그 세 가지를 고루 맛보며 비교해보고 싶어져서 샀을 뿐이다.

아직 김장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배추와 무, 대파, 생새우를 파는 분들이 계시는가 하면 지금 한창 맛이 들어 간장으로만 무쳐도 혼자 한 접시를 다 먹어 치울 수 있을 시금치도 있다. 겨울 푸른 채소의 제왕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붉은 뿌리째 나온 시금치는 사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시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시금치 먹을 생각에 군침이 돌게 만든다. 목포섬초라 적어놓은 걸 보며 비금도섬초라 하지 않았으니 솔직하신 것인가 하면서 웃는다.

통영이나 삼천포 같았으면 물속에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 옷을 다 적시게 요란한 몸짓을 하는 물메기가 나무상자 안에서 얌전히 있지만 제법 신선하기는 하다. 서해쪽 바다에 가까운데도 굴은 대개 통영이나 여수, 고흥에서 양식한 큰 굴이다. 자연산 소굴이 있으면 좀 사려고 했는데 아쉽다. 맛있는 부엌에 담가놓은 호박김치와 같이 끓이면 최고일 것 같은 자잘한 게들이 1kg에 만원이다. 열두세 마리가 올라가니 딱 찌개용이라 사고 싶지만 사지 못했다. 나이를 먹으니 먹는 양도 줄었고 수업도 없으니 먹을 사람이 없어서다.

 

전북 군산의 대야오일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상인들.
전북 군산의 대야오일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상인들.

 

벌써 냉이와 달래가 나왔다. 냉이도 사고 싶었지만 참고 장아찌용으로 욕심껏 달래만 샀다. 손이 시리다는 핑계로 막 구운 국화빵을 10개 사서는 셋이 나눠 먹고 팥처럼 달달해진 기분으로 동서로 긴 대야오일장의 서쪽 끝을 향해 전진한다.

여수, 순천엘 가면 어딜 가나 서대 사랑이다. 군산 인근의 바다에 면한 시장엘 가면 서대와 비슷하게 생긴 박대가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번 장에서는 밀박대를 만났다. 내 손 한 뼘도 채 안 되는 크기인데 소금으로 밑간 해서 말리면 노가리처럼 구워 술안주 하면 좋겠다. 같이 간 관희작가님이 사주셔서 손에 드니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익히 알고 있는 말린 박대도 샀다. 반만 건조한 물메기도 한 마리 사니 손은 무거워지고 지갑은 가벼워졌다.

조금 더 가니 왼쪽에 좌판을 다섯 개쯤 길게 벌여놓고 기업처럼 생선을 파는 상인들이 있는가 하면 작은 그릇 하나에 채소를 들고나오신 할머니도 계시다. 할아버지는 뒷전에 자리를 펴고 거나하게 술 한 잔 하시고, 그 앞의 할머니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르며 달래 한 접시를 팔기도 한다. 술 드시고 둔해진 감각으로 운전을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툭 치는 바람에 실랑이를 벌이는 곳도 오일장이니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술 안 마신 할머니가 대신 튀어나와 자신이 그랬다며 몰랐다고 사과를 하신다. 뻔한 거짓말에 피해자 행인은 그냥 넘어가지만 넘어가서 될 일이 아님을 다들 알고 있다. 어쩌면 윗대 어른들 돌아가시면 다 사라질 풍경들이라 그리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 장엔 홍새우가 녹아든 황석어젓, 살아서 펄펄 뛰는 민물새우, 그리고 갱엿과 내가 좋아하는 물미역도 흔하다. 낚시로 잡아왔다는 참붕어, 알이 작은 저장했던 배추와 무, 부위별로 파는 닭, 한과기능장이라며 물엿을 졸여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오란다들이 발길을 잡았다. 뿌리치고 자리를 뜨는 일이 쉽지 않다. 이상하게 오일장에만 가면 허기진다. 이번 대야장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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