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파독 간호사·광부① 서독에 갔던 그들이 고국에 왔다

  • 입력 2022.12.11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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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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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고국까지 몇 만 리던가 / 고향산천이 사무치게 그리울수록 / 편지를 기다리며 애를 태우네 / 부모와 처자들이 눈에 밟힐수록 / 아득히 멀어만 가는 조국, 조국… / 돌아가야지 / 아켄에서 가스를 먹고 잠든 / 경상도 친구도 잠을 깨어라 / 사나운 폭풍이 앞을 막아도 / 우리는 기어이 돌아가야 한다…

 

글속에 담긴 지은이의 절절한 마음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시도 드물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징용 끌려갔던 조선 사람이 쓴 시가 아니다. 1960년대에 서독으로 돈벌이를 떠났던 광산 노동자가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쓴 자작시의 일부 내용이다.

부모와 처자를 멀리 두고 이역에 머물고 있던 그에게, 몇 만 리 저 편의 ‘조국’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켄’에서 가스를 먹고 잠든 경상도 친구는 또 누구였을까?

수만 리 밖의 고국을 몽매에도 그리던 그 광부들이 드디어 한국에 왔다. 그들뿐 아니다.

“그때 저는 강릉간호학교를 졸업하고 도계에 있는 석탄공사 부속병원에서 1년째 근무 중이었어요. 사실은 미국으로 가고 싶었는데, 마침 서독에 파견할 간호사를 뽑는다고 해서 친구랑 둘이 신청을 했었지요. 떠날 때 나이가 갓 스무 살이었는데 이제는 할머니가 다 돼서….”

그렇게 이 땅을 떠났던 20대의 고운 우리의 간호사 누이들도,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모습으로 처음 고국 땅을 밟았다.

2002년 3월 23일 저녁, 서울 남산자락의 타워호텔 연회장에는 육칠십 년대에 독일로 떠났던 광산노동자들과 간호사들이 대한적십자사의 초청으로, 그리던 고국을 방문하여 감회 어린 표정으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연회장에서 마주친 아무나 붙잡고 말을 붙였다. 그들은 할 얘기가 참 많았다.

“부산이 고향인데 간호사로 서독에 간 지 36년 만에 처음 한국에 왔어요. 전해 듣기는 했지만 서울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

“고향이 서울이에요. 60년대 중반에 서독에 광부로 갔었는데…제가 떠날 무렵에 한강에 다리가 철교 포함해서 세 개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스물 몇 개라고 하네요, 허허허….”

“고향이 전주인데요, 이번에 독일인 남편하고 같이 왔어요. 친정집은 이사 안 가고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집을 못 찾아서 엄청 헤맸다니까요. 옛날에 순 미나리꽝이었던 곳으로는 아스팔트 도로가 나 있고, 초가집들 있던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한강다리가 두세 개에서 스물 몇 개가 되고, 미나리꽝이 신작로가 되고, 쓰러져가던 초가마을을 아파트촌으로 변모시킨 그 과정에, 일찍이 고국을 등지고 머나먼 서독 땅으로 떠났던 바로 그 광부들과 간호사들의 기여가 작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열악한 경제상황을 타개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박정희의 군사정변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미국의 케네디 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 원조를 중단해버렸다. 그러자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차관을 들여올 궁리를 하게 됐는데, 그 대상이 바로 서독이었다. 당시 서독은 2차 대전의 폐허를 딛고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제부흥을 구가하던 중이었다. 1961년 12월, 한국정부가 독일에 파견한 ‘차관교섭 사절단’은 천신만고 끝에 1억5,000만 마르크(당시 돈으로 3,000만 달러)의 상업차관을 얻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조건이 붙은 돈이었다.

-지금 우리 독일에는 탄광에서 일할 광부가 턱없이 모자란다. 혹시 한국에서 5,000명 정도를 파견해 줄 수 있겠느냐? 병원에서 일할 간호조무사도 2,000명 가량이 필요하다. 만약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줄 수만 있다면, 그 사람들의 급여를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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