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있고 농민은 없는 농식품부 조직 개편

  • 입력 2022.12.11 18:00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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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가 10년 만에 조직을 개편한다. 정원도 13명이나 늘어난다. 그런데 신설되는 국이 ‘동물복지환경정책관’이고 증원인력 상당수가 ‘동물복지’ 분야에 집중 투입된다고 하니, 새 농정조직에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난망하다.

농식품부는 ‘미래 농정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비한다’면서 유독 반려동물 문제에 치중한 것 같다. 농식품부의 설명에 따르면 “동물학대, 유기방지, 반려동물 산업(펫푸드, 미용·장묘업 등)에 대한 행정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이를 전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 농정 수요’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억지스러운 결과다. 다른 과 조직의 신설 등 의미가 있는 개편도 있지만, 동물복지 분야에 직제상 국을 신설하고 인력을 두 배가량 늘린다는 건 지나치다는 평가밖에 할 말이 없다.

지금 농촌 현실은 어떤가. 생산비는 폭등하고 농산물값은 폭락했다.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데 하루가 다르게 이자율이 폭등해 농협 문자에도 덜컥 놀라기부터 하는 게 농민들의 겨울 일상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 대출을 받았는데, 이를 갚을 길이 없으니 내년에도 과연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지속성이 담보되지 못한 채 농민으로 살아가야 할 기본권리마저도 보장받을 수 없다.

농식품부의 조직 개편에도 새로운 농정방향이 담겨야 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식량주권은 국의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끝냈고 농민의 권리분야나 인권 관련 직제개편은 없다.

유엔총회에서 ‘농민권리선언’이 채택된 이상 농민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와 220만 농민에게 적용돼야 할 농민의 권리가 보장되는 농정의 틀이 마련돼야 한다.

세계의 많은 국가가 코로나19, 기후위기, 전쟁위기 속에서 식량위기 문제를 해결할 식량주권에 농정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반려동물 산업의 수요보다도 농업에서 농업인구의 절반 이상인 여성농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그 속에 차별금지와 참여권을 보장하는 것에 대한 요구는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의제다. 유엔의 농민권리선언에서도 여성농민의 삶의 질과 권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반려산업이나 동물복지 문제를 소홀히 하라는 뜻은 아니다. 말 못하는 반려견을 위한 조직 개편도 중요하지만 여성농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여성농민 전담 정책국 등이 생기는 게 더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은 농민권리를 회원국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한국은 47개국으로 구성된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기권했고 총회에서도 기권표를 던졌다.

농민들은 유엔 농민권리선언이 강조하는 농업의 가치와 식량주권 등을 반영한 농식품부의 조직 개편이 시급하다고 판단한다. 식량의 안보를 내세우면서 공급의 다변화와 외국에 의존하는 형태의 정책을 유지한다면 공급망이 불안정한 상황에 우리 국민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하는 일 역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식량주권을 지키고 자급률을 높이며 공공수급제를 통해 농산물의 가격폭락과 폭등을 겪지 않는 계약재배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농민들이 내년에도 농사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늘어난 인력을 추가 배치했다고 한다면 얼어붙었던 농민의 마음도 한결 위안이 됐을 텐데, 윤석열정부 농정은 이렇듯 출발부터 어긋나고 있다. 미래농정 수요라면 탄소중립 분야, 먹거리복지 분야부터 확대·강화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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