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촌과 도시의 경계에 존재하는 것

  • 입력 2022.12.11 18:00
  • 기자명 최덕천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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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천 상지대 교수
최덕천 상지대 교수

 

“농업인 공익수당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사용하세요!”

면사무소 사거리에 농업인 수당 7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니 지역에서 사용해 달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 농업인 수당은 지자체 조례에 따라 2년 이상 계속 해당 지역에 주소를 두고 거주하면서 2년 이상 계속 농업경영체로 등록하고 영농에 종사하는 농가를 대상으로 한다. 그렇다면, ○○시 ○○면 ○○리 ○○아파트에 주소를 두고 14년째 농촌지역에 살고 있는 나 또한 신청 대상자일까?

비록 거주하는 집은 아파트지만, 걸어서 5분 정도만 가면 근처 산비탈에 텃밭이 있다. 직장에서 일을 하는 시간 이외에 여가시간의 많은 부분을 텃밭에서 보내는 나를 보고 동네 아이들은 ‘농부 아저씨’라고 부른다. 나는 도시 농민으로서 농촌주민이기는 하지만 농지원부가 없기 때문에 농업인도 아니고 농가도 아니다. 그러므로 농업인 수당이나 공익직불금을 받을 수 없다. 농촌지역의 도시 농민이니 언젠가 농산어촌기본소득은 받을 수 있을까?

필자는 도시와 농촌의 경계지역에 살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경계인이고 사회적으로는 관계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경계는 시공을 구분하는 용어이고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지리적·지역적·산업적·심리적 구분 등 시공이 뒤섞인 곳에 존재한다. 과거에는 도시와 농촌이 시와 군으로 경계가 분명했다. 과거의 도시는 오늘날의 구도심이 됐고, 인근 농촌의 격오지와 함께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대신 과거 도시 근교이던 농촌지역의 농지는 신도시로 광역화돼 바로 그곳이 지금의 경계지역·복합지역이 된 것이다. 지금 시대는 경계가 많고 다양하게 존재한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탈근대적 문명전환기’의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계지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사회 측면에서는 농민, 농축산물의 생산자와 소비자인 도시민이 공존하며 진짜농부와 가짜농부가 함께 산다. 산업 측면에서는 농업, 공업, 상업이 공존하고 1차 농축산물과 가공, 유통, 소비 또한 공존한다. 지역 측면에서는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고 농가주택, 농막, 별장, 고급 주택, 카페, 오토캠핑장, 펜션 등이 함께 있다. 농지에 대해서도 농업인의 생각은 하루에도 여러 번 경계를 오간다. 농사를 짓기 위한 농경지인지 농지보유를 통한 자산증식과 보전의 수단인지를 놓고 말이다. 앞으로 주4일 근무제와 재택근무 확대, 저출산-초고령화, 2인 부부 가구, 4도 3촌, ‘나홀로족’들의 귀농·귀촌이 확산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경계지역을 오갈 것이다.

이른바 도농복합도시의 경계지대에는 농어촌특별세를 내는 납세자와 그 재원으로 인해 혜택받는 수혜자가 함께 산다. 그리고 그 입장이 갑자기 뒤바뀌기도 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여러 후보들이 이 경계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솔깃할 만한 공약들을 내걸고 ‘말의 성찬’을 베푼 바 있다. 예를 들어 △다양한 선택형 공익직불 프로그램 도입 및 예산 확대 △농어촌주민 기본소득 지급△농어촌지역 이장 수당 인상 △농림·농산촌 공익직불제 확대 △농어민 기본소득 지급 △농민수당 지급 등이 그것이다. 정당이나 후보자의 농정철학에 따라서 용어는 조금씩 다르고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본질은 모두 ‘3농’을 위한 소득보상안이라는 점이다. 농업·농촌·농민 중 어디에 주안점을 두는지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금액도 다양하다. 그래서 농민과 농촌 거주민의 자격과 범위를 놓고 주민 간 그리고 주민과 행정 간의 관점 차이로 인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

최근 환율 상승, 기후위기, 국제분쟁 등으로 인한 ‘블랙 스완’으로 농축산 자재 가격 및 인건비가 상승해 농가경제도 한계상황에 처해 있다. 더욱이 쌀값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농촌의 진짜 농민들은 지자체가 주는 농업인 공익수당 받아서 추운 겨울을 버텨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누가 농사지으려 할 것이며, 청년농 3만명에게 무슨 비전을 제시하며 무슨 근거로 농산촌에서 살라고 할 것인가?

경계(境界)는 사전적으로는 사물과 지역과 옳고 그름이 나뉘거나 구별되거나 분간되는 한계를 의미한다. 농도불이(農都不二)라는 말이 있고 농도상생(農都相生)이란 말도 있다. 곡직불이(曲直不二)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 경계라는 말 속에는 서로 경계가 없음을 내포하고 있다. 농촌소멸의 비용은 고스란히 도시비용이 되고, 그 이해득실도 다음 세대의 몫이 된다. 추후 농촌 공동체 회복, 농촌안전망 관리 직불제 등 다양한 선택형 직불제 도입 논의가 예상된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위에 나열된 다양한 농가소득보상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왕 선택된 선택적 공익직불 프로그램이 제대로 이행되는지도 눈여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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