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옹기⑧ 우리 동네에 옹깃배가 들어왔다

  • 입력 2022.12.04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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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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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리 선착장, 옹깃배의 선원들이 출항 준비로 복작거린다. 크고 작은 옹기들이 선창으로 끌려나와 줄지어 섰다. 선적 작업을 하는 선주와 선원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안 깨지게 조심조심해서 실으라고! 큰 항아리부터 안쪽에다가 차근차근 실으랑께!

-저 쪽 먼 바다에서 샛바람이 시게 불어싸는디…오늘 옹기 실고 나가도 괜찬할랑가?

-옹깃배 하루 이틀 타봐? 문제없어. 돛 달아놓으면 뒷바람 타고 잘만 나가겄구먼.

-다 실었으면 닻 올리고 출발하드라고! 아, 고사 지낼 도야지 머리하고 막걸리도 실어야제!

드디어 물밑에서 닻이 올라오고, 옹깃배가 서서히 봉황리 선착장을 물러난다. 이들은 공장으로부터 옹기를 도매금으로 넘겨받아 바다를 누비며 장사를 하는, 옹기 전문의 장사꾼들이다.

“옹기공장의 주인인 생산주가, 선박을 소유한 선주한테 도매금으로 옹기를 넘겨요. 그러면 선주는 선원 세 사람과 함께 옹기를 싣고 출항을 하지요. 배가 선창을 벗어나면 용왕님한테 제사를 지내고나서 먼 바다로 나가는데, 한 번 장삿길에 나섰다 하면 다 팔고 오기까지 보통 40일쯤 걸려요. 잘 안 팔리면 뭐 두 달이 넘게 걸리기도 하고. 수익 분배는, 구입 원가를 제외한 순이익금 중에서 선주가 7분의 4를 차지하고 나머지 7분의 3을 가지고 세 명의 선원들이 나누지요. 암만해도 선박과 자본을 소유한 선주가 목돈을 벌게 돼 있는 구조예요.”

따라서 마을에서 부자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모두 옹기상선의 선주들이었다. 그들은 옹기공장 주인들과 독점적인 거래관계를 맺고서, 옹기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경비를 선금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옹기가 한창 잘 나가던 1960년대에는, 봉황마을 선착장을 근거지 삼아 드나들었던 옹기상선만 수십 척씩이나 됐다고 정윤석 씨는 회고한다. 상인들은 돛단배에 옹기를 싣고 인근의 장흥, 해남, 청산도 등지 뿐 아니라 멀리 여수, 부산, 제주도까지 다니면서 옹기를 팔았다.

-옹기가 왔습니다. 칠량 봉황마을 옹기가 왔어요. 김장독, 간장독, 고추장독, 옴박지, 오가리, 물동이, 떡시루…없는 것이 없어요. 동네 사람들! 옹기들 사러 선착장으로 내려오시오!

동네 스피커로 한바탕 선전을 하고나면 주민들이 우르르 선창으로 몰려왔다.

-쩌어그 저 된장독은 얼매요?

-2백원만 내씨요.

-뭣이 그렇게 비싸. 그라고 나는 돈 안 갖고 왔는디 보리쌀은 안 받어 줄란가?

-보리쌀, 좁쌀, 녹두, 콩, 뭣이든지 다 받습니다. 자, 된장독 조심해서 이고 가시고….

현금거래가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이런 식의 물물교환이었다. 곡식으로 대신 받아왔다가 내다팔면 금세 현금으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에, 어떤 농산물이든 가리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장삿길이 늘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파도가 거칠어지는 것이 태풍이 오는 모냥이네. 안 되겄어, 짐을 덜어야 쓰겄응께 무거운 항아리부터 바다로 내던지자고! 아이고, 용왕님께 고사도 잘 지냈는디, 요거이 뭔 재변이라냐.

“어느 해엔 보성의 득량바다를 지나던 우리 동네 옹기선이 침몰해서 세 명이 목숨을 잃었고, 또 다른 옹깃배는 청산도에서 제주로 건너가다 파선되는 바람에, 일본에서 가까스로 시신을 수습하여 비행기로 실어오기도 했어요.”

1970년대 들어 옹기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선원 구하기도 힘들어졌다. 선주가 수익을 5대5로 나누자고 제안했다가 급기야는 선원 몫을 7로 하고 나는 3만 먹을게, 그랬는데도 옹깃배 타겠다는 사람이 드물었다. 70년대 말에는 봉황마을의 옹기공장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물론 선착장에 즐비하던 옹깃배들도 종적을 감췄다. 그리고 2001년 정월.

“어쩌겠어요. 옹기마을의 맥을 혼자라도 이어가봐야지요. 광택 내는 화학유약, 그런 데에 눈 돌리지 않고 천연잿물 사용하면서…하는 데까지 해볼랍니다.”

옹기장이 정윤석 씨가 나에게 내비친 다짐이 이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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