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S 장벽’ 해체, 왜 우려하는 걸까?

구획화·동등성 이슈, 검역조치·비관세장벽 약화할 공산 매우 커
정부, ASF 발병 독일산 돼지고기 ‘지역화' 요구에 수입 재개도
“새 SPS 대응에 농업선진국 수준의 인력·예산 등 기반 마련해야”

  • 입력 2022.12.04 18:00
  • 수정 2022.12.04 19:4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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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1993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로 인해 본격 시작될 것처럼 보였던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주의 무역체제는,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원래 목표했던 바(도하개발어젠다)와 같이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아우르는 완전체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다.

비록 WTO 체제가 완전히 무너져내린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만족할만한 효율을 찾지 못한 주요 참여국들은 각자의 이익을 따져가며 정말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양자 간 맞춤형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형태로 무역을 확장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4년 칠레와 처음으로 FTA를 체결함으로써 ‘FTA 시대’에 동참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오늘날 세계는 다시금 ‘공동시장’ 형성에 공감대를 모으고 있다. 비록 UR의 다음 단계인 도하개발어젠다(DDA)가 추구하던 바와 같이 단일 기준의 세계시장과는 아직 거리가 멀지만, ‘메가 FTA’라 불릴 만한 몇 개의 커다란 덩어리가 형성됐다. GDP의 많은 부분을 무역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역시 이 흐름을 외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대내외적으로 계속됐고, 결국 태평양을 구심점으로 11개국의 시장을 한 데 묶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에 뛰어들었다.

농업 분야에서 CPTPP는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체결국과 이미 맺은 FTA의 양허관세가 수정되는 것보다도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메가 FTA가 공공시장의 구현을 위해 동식물위생·검역(SPS)의 무역제한적 기능을 더욱 줄였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는 각 FTA에서 WTO가 정한 기준으로 SPS를 적용하고 있는데, 이에 근거한 수입제한조치는 그간 우리 농업을 보호하는 장벽 역할에 있어 사실상 관세보다 더 큰 역할을 해왔다.

구획화·동등성 … 새로운 문제들

CPTPP의 협정문 중 SPS를 다루는 제7장에서는 기존 WTO의 SPS 규정을 ‘강화한다’는 목표 아래 추가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세간에 가장 많이 알려진 우려 지점은 ‘청정지역’의 구획화다. 기존의 SPS는 병해충이나 가축전염병으로 인한 식품 안전 위험 발생 시 수출국이 일부 지역의 안전성을 증명할 수 있고 지리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경우 일부 지역에 한해 수출할 수 있는(지역화) 구조였다.

이전까지는 대부분 국가 단위의 수입금지조치 위주로 식품안전을 담보하고 있었으나, 2015년 조류 인플루엔자를 이유로 인도가 미국산 가금류 수입을 지역 관계없이 전면 금지하자 미국이 이에 반발했던 것을 계기로 지역화 관련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이 사례를 비롯해 수출국이 규정에 따른 조건을 충분하게 마련한 경우 WTO는 대부분 수출국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추세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우리나라는 지난 2020년 9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병을 이유로 독일산 돼지고기를 전면 수입 금지했지만, EU와 독일의 ‘청정지역 지역화’ 요구를 각국이 받아들이는 형국 속에 결국 지난 8월부터 수입을 재개했다.

CPTPP의 SPS에서 언급하는 구획화는 지역화와는 또 다른 개념으로, 지리적 경계상의 일부 ‘영토’가 아닌 개별 농장이나 시설을 하나의 판별 단위(구획)로 설정하는 방법이다. 안전과 청정을 입증할 수 있는 관리방식이 적용되는 농장을 하나의 ‘구획’으로 주장할 수 있고, 동일 관리방식이 적용되는 농장들이 여럿이라면 지역과 무관히 이들이 ‘하나의 구획’으로 묶일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의 A주에서 가축전염병이 발생했다고 해도 이 지역에 규정상 차단 방역이 인정되는 ‘구획’ 상의 농장이 있다면 이 농장에서 생산한 축산물은 청정지역 내 생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구획화의 적용은 수입국에 있어 수출국에 대한 분석과 검토가 매우 복잡해졌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동등성’에 대한 평가 의무가 부여된 것은 농식품 수출국보다는 수입국 입장에 있는 우리에게 더욱 가혹한 조건일 수밖에 없다. CPTPP SPS 규정에 따르면 동등성 평가를 요청받은 수입국은 SPS에 따른 조치가 수출국의 그것과 같은지 평가를 개시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수출국이 자국의 조치가 수입국이 설정한 적정 보호 수준을 달성하는 것을 증명하는 경우 수입국은 이를 인정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므로, 현재 병해충으로부터의 보호를 이유로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는 사과·배·복숭아 등의 경우가 이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동등성 관련 추가 내용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그 조치가 ‘보호 수준을 달성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수입국의 조치와 동등한 효과를 지닌 경우에도 동등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쉽게 말해 동등성 인정 범위가 훨씬 늘어난다는 것으로, 수입국 입장에선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카드의 수’를 줄이는 결과를 낼 것이 자명하다.

“새 SPS 대응 인력·기반 확충 시급”

명백하게 불리한 전장에 뛰어드는 만큼 우리나라의 SPS 대응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부 관계부처들이 합동으로 CPTPP 가입추진 계획을 서면 의결한 직후였던 지난 5월 ‘CPTPP 가입 추진에 따른 SPS 상의 쟁점과 과제’라는 현안분석 보고서를 냈는데, 중요 대응과제 중 하나로 국내의 SPS 조직 및 인적·물적 기반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과 보강을 언급했다.

김규호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이 보고서에서 전문가들이 국내 인적 기반의 부족에 대해 이미 지적하고 우려하고 있는 내용을 소개하며 “농식품 수입국 입장에서 CPTPP의 SPS는 보다 많은 검사를, 보다 빠른 시간 안에, 보다 과학적이고 정량적인 방식으로 수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관련 건의 개시부터 완료까지의 모든 과정이 보다 적시에 보다 투명하게 공개돼야 함도 물론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CPTPP 가입을 신청하더라도 이후 협상과 가입에 소요될 일정이 불분명한 가운데 현행 SPS 기반과 시스템의 보강에 대한 당위성이나 보강 수준을 당장 지금부터 매우 높게 설정하기는 무리겠지만, 적어도 국내 SPS 시스템의 현재 역량을 CPTPP의 SPS에 비춰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는 일은 당면과제가 돼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달 18일 열린 ‘농업통상전략 민·관·학 포럼’에서도 임정빈 서울대 교수가 국제 SPS 규범 강화 추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현재 이행 체제를 점검하고, 최대한 빨리 미국·호주·EU 등 선진국 수준의 조직·인력·예산·장비·법규 정비 등의 기반 확충 및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SPS 조치는 근본적으로 국민의 건강, 동식물의 보호라는 공공적 성격을 지닌 동시에 농식품 무역관련 분쟁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는바, 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적·물적 투자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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