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순영씨를 말하다

  • 입력 2022.11.27 18: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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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농민들에게 햇빛은 최고의 은혜이지만 동시에 고통이기도 합니다. 작물을 자라게도 하면서 얼굴을 태우니까요. 우리는 밝은 얼굴빛을 선호하는 문화적 추세가 있습니다. 그러니 너도나도 챙넓은 모자로 햇빛을 가립니다. 그런데 일할 때 굳이 모자를 챙겨 쓰지 않고, 농사일할 때 맨손으로 일하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마을마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얼추 비슷합니다. 손이 빠르고 일머리도 좋고, 일 앞에서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주변적인 요소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해야 할 일은 꼭 해내고 마는 고집스러움을 가졌다고나 할까요?

최근에 알게 된 어떤 여성농민이 있었으니 그이가 딱 그 형색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굴과 손이 새까맣고 포장된 세련됨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50대 전업 여성농민입지요. 오늘날 요양보호사로 뛰지 않고, 식당에 일하러 가지도 않고, 마켓 점원으로 일하지 않고서, 고만고만한 노지농사를 짓는 50대 여성농민을 만나기란 정말로 어렵습니다. 게다가 구순의 시어머니도 계셔서 낮 동안이라도 덜 마주치려고 집을 나가서 다른 업종에 종사하고 싶을 텐데, 기꺼이 농사를 고집합니다. 그러니 그 까만 얼굴은 농사에 대한 강한 애착과 자부심이었던 것이지요. 주어진 삶의 과제를 피하지 않는 용기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요? 어찌어찌하여 여성농민 모임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낮 모임에만 참석하더니, 이제는 밤낮 구별도 않고, 관내는 물론 장거리 행사에도 줄곧 찾아 나섭니다. 천상 농사꾼이더란 말입니다. 농업과 관련된 얘기가 많이 오가는 모임이 그이의 적성에 딱 맞았나 봅니다. 그랬겠지요. 농사짓고 사는 농사꾼의 정체성에 맞는 모임이 흔하던가요? 농촌지역의 숱한 계모임이나 동호회, 동창회가 있지만, 자신이 사랑하고 힘을 쏟는 농사 얘기를 나눌 공간이 못 되었던 것이지요. 농사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나누거나, 새로운 관심거리 대신 새로 산 자동차와 멋진 취미활동, 출세에 관한 얘기가 주를 이루고, 어쩌다 농사 얘기가 나와도 농사로 인한 애환이나 경험치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농업에 대한 피상적인 얘기나 뜻에 없는 연민의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큰 행사를 앞두고서 손을 보탤 사람과 먹거리를 보탤 사람 등 행사를 잘 구성하기 위한 회의를 하는데, 그이가 찹쌀 20kg을 선뜻 내놓겠다 했습니다. 참석자들이 반색을 하면서도 너무 많다고 10kg만 해도 된다 하니, 그 양으로 어떻게 여럿이 나눠 먹겠냐고 줄곧 20kg을 고집했습니다. 그 마음의 크기가 그이의 크기겠지요. 어느 날은 농사일이 많은 회원이 일손을 못 구해서 고민하니까 또 일손을 보태겠다고 자원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정작 자신의 농사도 적은 양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아, 자신에게 농지를 물려주신 시아버지께 감사한다는 말을 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찐 농사꾼입니다. 농업에 대한 애정, 삶의 능동성, 뜻깊은 나눔까지 무엇하나 손색이 없는 삶의 태도에 모두들 놀랐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내면의 힘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이도 알까요? 너무도 멋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혹 모른다면 누군가는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젊은 여성농민이 농사에 참여하기란 참 쉽지 않은 시절입니다. 농사일의 힘겨움은 차치하고서라도, 소득은 말할 것도 없고, 가부장적인 문화며 정주 여건 등 무엇 하나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기꺼이 시어른을 모시고 돌봄노동을 하며, 농사를 짓고 이웃과 가장 중요한 것을 나눌 줄 아는 삶을 사는 그이가 아직도 농촌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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