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옹기⑦ 긴장하라! 옹기 가마가 열리던 날

  • 입력 2022.11.27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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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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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에 옹기를 넣어서 배치했으면 이제 불을 때서 굽는 일이 남았는데, 옹기 가마에 불을 전문적으로 때주던 기술자가 따로 있었다. 처음에 약한 불을 지필 때에는 옹기공장 주인이 아궁이를 담당해도 되지만, 막판에 온도가 1,000℃ 가까이 올라갈 즈음에는 전문적인 기술자가 온도 조절을 해야 한다. 옹기장이 정윤석 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옹기를 성형해서 바깥에서 일차적으로 건조시켰다 해도, 여전히 일정부분 수분을 함유하고 있거든요. 옹기를 가마 안에다 쟁여놓고 불을 때면, 가마 내부의 열기로 인하여, 옹기의 수분이 미세한 구멍을 통하여 서서히 빠져나가게 되지요. 온도를 점차적으로 올려서 옹기의 수분이 다 증발했다 싶으면 불을 끄고서, 찬 공기가 안으로 못 들어가도록 가마를 봉해버려요. 그 상태로 이틀 동안 놓아두면 내부에서 서서히 식어가지요. 사흘째 되던 날엔 봉했던 가마를 여는데 한꺼번에 활짝 열면 안 되고, 시간 간격을 두고 한 구멍씩 터줘야 해요. 그래야 천천히 식거든요. 나흘째 되는 날 꺼내지요.”

가마에서 옹기를 굽는 데에는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점차적으로 높아지던 가마 속의 온도가 엿새째 되는 날부터는 800℃를 넘어서고 이레째에는 1,000℃에 육박하게 되는데, 그 마지막 48시간 동안 불 관리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 어디 잘 구워졌는지 한 번 들어가보드라고.

옹기공장 주인이 가마 안으로 들어가고, 그 밑에서 일하는 기술자들도 뒤를 따른다.

-아이고 요거이 뭔 일이라냐. 요놈은 금이 가부렀고, 저놈은 또 뒤틀려부렀네.

-이 중독(중간크기 항아리)은 내가 맹근 것인디 찌그러져부렀네. 에이, 망할 놈의 것!

성형한 옹기를 가마에 넣어서 80% 정도를 건지면 매우 성공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애써 만든 옹기의 3분의 1쯤은, 굽는 과정에서 실패할 것이라고 미리 각오를 해야 한다는 얘긴데, 어떤 땐 절반도 못 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옹기공장 주인으로서는 죽을 맛이지요. 가령 인건비와 재료비를 합쳐서 1,000만원이 들었는데, 완성된 옹기가 500만원어치밖에 안 된다 하면…뭐, 누굴 탓하겠어요. 그럴 땐 술이나 진탕 마시고, 심하면 속상해서 펑펑 울기도 해요.”

옹기공장 주인은 가마를 열 때마다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린다. 옹기 만드는 기술자도, 사전에 자신이 만든 옹기에 대한 수당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옹기가마가 열리는 날에는 역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여그 이 비뚤어진 것 누가 맹근 것이여? 최씨 솜씨 아녀? 맞제? 여그 깨진 오가리 두 개는 박씨 작품이고….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똑같은 조건에서 항아리를 만들었는데도, 다른 기술자가 만든 것은 멀쩡하게 구워져 나온 데 반해 자신이 만든 항아리만 뒤틀리거나 금이 갔을 경우, 옹기 기술자 역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깨진 것이야 하는 수 없이 폐기처분해야 하지만, 모양이 비뚤어진 제품은 싼값에 팔려나가기도 한다. 옹기장사를 하는 상인들 중에는 그런 하자 있는 제품만을 싸게 구입해서 소비자에게 파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얼핏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는 항아리들이지만 옹기 기술자들은 자신이 만든 항아리를 어디 갔다 놔도 감쪽같이 알아본다는 점이다.

“옹기를 배로 실어다가 제주도나 목포나 삼천포에 갖다놔도, 아니 멀리 하와이에 갖다놔도 요건 내가 만들었다, 하는 건 다 알아요. 내가 안 만든 것도, 저건 내 옆에서 물레질 하는 기술자 박씨 솜씨다, 그런 것까지도 대충은 알지요.”

무슨 표시를 해둔 것도 아닌데 무얼 보고서 식별하느냐고 물었는데, 옹기장이 정윤석 씨의 대답은 “그냥 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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