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물 할인 정책, 쌀값 하락 부추겼나

농식품부 할인사업, 2021년산 쌀 가격하락 조장 의심

경기도 할인사업, 2022년산 쌀 가격하락 되풀이 우려

  • 입력 2022.11.21 09:01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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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정부·지자체의 농축산물 할인 정책이 쌀값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폭 할인된 쌀 소매가격이 소비지와 산지의 쌀값 기준을 낮추는, 일종의 덤핑 효과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는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부터 매년 ‘농축산물 할인쿠폰’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소비자에게 농축산물 구입 비용의 20~30%를 할인해주는 사업으로, 소비자물가 안정과 농산물 소비촉진이 목적이다. 2020년 400억원으로 시작해 2년 연속 1,000억원 이상(추경·예비비 포함)의 예산이 투입됐으며, 현 정부의 ‘밥상물가 안정’ 기조를 타고 내년엔 본예산만 1,080억원이 편성됐다.

논란이 처음 등장한 건 지난해 12월 강원도 철원에서다. 철원 오대쌀 10kg 소비자가격은 통상 4만원 언저리인데, 이 시기 2만원대 중반의 가격이 등장한 것이다. 20~30% 정부 할인만 해도 파격인데 여타 할인행사까지 겹쳐서 나온 가격이다.

김용빈 철원군농민회장은 “할인판매 외 나머지 물량은 제값에 나가야 하는데 할인판매 가격이 오대쌀의 기준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냈다. 당장 직거래하던 사람들로부터 시중가보다 훨씬 비싸다는 항의가 들어왔고, 농협이 물량소진을 못 하고 100억원 이상 적자를 낸 데도 이 할인판매의 영향이 있다”며 “소비촉진을 하려면 농축산물 바우처 형태로 하든지 해야지 이런 대규모 할인 정책은 농민들을 짓밟는 것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최호종 농식품부 식생활소비진흥과장은 “할인 정책이 수요를 자극해 가격을 올릴 거라는 우려는 있었어도 쌀값을 낮춘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며 “농가수취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게 아니라 소비자 부담을 덜고 수요를 늘리기 위한 정책”이라고 해명했다.

농민들의 의심처럼 정부 할인 정책이 쌀값하락을 부추겼다는 확증은 존재하지 않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쌀은 수확기가 되면 그 당시의 시세를 기준으로 한 번에 수매가를 결정하는, 농산물 중에서도 독특한 가격결정 구조를 갖는다. 수매와 유통은 미곡종합처리장(RPC)이라는 대형 거점이 담당하며 주곡인 만큼 소비자들도 비교적 가격에 민감한 편이다. 과도한 할인 가격은 RPC들이 수매가를 낮추는 명분이 되기도 하거니와, 적정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왜곡해 수요에 ‘요요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기록적 낙차의 쌀값 폭락 국면에 이같은 요인들이 기폭제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행히 농식품부 할인 사업은 올해 초 쌀값 하락 이후 쌀을 대상에서 제외해 새로운 논란은 초래하지 않고 있다. 다만, 올해는 경기도(지사 김동연)가 새로 234억원 규모의 농축산물 할인 정책에 나서 농민들의 우려를 모으고 있다. 연말까지 경기미를 비롯한 경기산 농축산물을 최대 30% 할인해주는 정책이다.

이 사업은 농식품부 사업과는 결을 조금 달리한다. 막연한 소비촉진이 아니라 경기미의 심각한 재고문제를 타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기미는 타 지역 쌀보다 가격이 높은 탓에 폭락 국면에서 재고소진에 애를 먹었는데, 9월부터 시작한 이 사업이 농민들의 숨통을 틔워준 것이다.

하지만 할인이 2022년산 신곡에까지 적용되면서 결과적으로는 농식품부 사업과 마찬가지로 덤핑 효과를 초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등장하고 있다. 전용중 여주시농민회 흥천면지회 총무는 “7~8월에 시행했다면 재고미에 집중적으로 도움이 됐을 텐데 시행이 늦어 신곡 가격까지 낮추고 있다. 여주는 둘째치고 쌀값이 늦게 결정되는 타 지역에 당장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이수 한국후계농업경영인 화성시연합회장은 “화성시가 지역특화 고급미인 ‘수향미’를 장려하고 10kg 2만9,000원 이상을 받도록 몇 년에 걸쳐 궤도에 올려 놨는데 농협에서 2만3,500~2만6,500원짜리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소비자들이 정상가에 이 쌀을 사먹을까도 걱정이고, 올해 손해를 본 민간RPC들도 내년에 손해를 메우려 수매가를 깎을 것”이라고 우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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