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무지갯빛 농민

  • 입력 2022.11.21 08:54
  • 수정 2022.11.21 09:07
  • 기자명 박효정(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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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경남 거창)
박효정(경남 거창)

올해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한 ‘주요 농업 관련 교육기관 성평등 모니터링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타 시·군 농업기술센터 교육과 온라인 교육을 포함하여 11회 모니터링 조사를 수행했지요.

마침 한창 바쁜 농사철이라 마음이 분주했지만, 시간을 내어 하반기에 몰린 농업 교육을 찾아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농업 교육에 성인지 감수성이 어느 정도 녹아들었는지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비록 밭에선 수확이 늦어졌지만, 모니터링을 하면서 덤으로 새로운 농사 정보를 수집하며 배우는 재미를 얻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말은 들어보셨나요? 일상에서의 성차별 및 성역할에 따른 불평등과 불합리함을 감지하는 민감성을 말합니다. 특히 가부장제 농촌에서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의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단단히 키워야 할 능력이기도 하지요.

눈여겨봐야 할 성평등 모니터링 체크리스트에 있는 항목은 이렇습니다. 농촌의 남성 중심적 문화를 당연시하는가?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표현하는가? 일하는 농업인의 이미지가 남성이고 여성은 돌봄 담당자로 표현하는가? 작목반, 마을 대표성의 남성성을 당연시하는가? 4인 가족을 전형적인 가족 유형으로 삼는가? 등입니다. 물론 여전히 뿌리 깊은 농촌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모름지기 교육생이 한 걸음 나아가도록 진취적이어야 할 수업이니만큼 성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과거에 묶여 있지는 않은지 짚고 가야 할 지점입니다.

이를테면 교육 자료에 나온 그림에 여성 이미지는 분홍색, 남성 이미지는 파란색으로 표현했다면 고정관념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또한, 공익직불제 교육 자료로 ‘직불리 어벤져스’ 영상을 3편 시청했는데, 농업인의 이미지를 남성화하고 마을에서 활동하는 남성이 대표성을 띠는 문화를 재생산하고 있었습니다. 하물며 여성농업인은 보조자의 역할로도 거의 나오지 않았죠. 이렇듯 여성농민이 배제되고 성인지적 감수성이 결여된 자료가 배포되고 있다는 점이 유감이었습니다.

강의 내용뿐만 아니라 교육 주체와 환경도 살펴보았습니다. 일례로 농업교육포털에 ‘친환경채소 마이스터의 노하우’ 강사 4명이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농업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보유했다고 인정하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선정하는 농업마이스터의 성비를 찾아보니, 총 245명의 선정자 중 여성 농업마이스터는 고작 2%에 불과했습니다. 농업마이스터를 신청하는 응시 현황을 보아도 남성의 10%도 안 되는 비율일뿐더러, 합격률도 절반 가까이 낮았습니다. 강사의 비율뿐만 아니라, 농업기술센터에서 영농 기초기술 교육인 미생물 강의에 참석한 교육생의 성비 또한 불균형을 보였습니다. 전체 교육생 중 약 16%만이 여성이었습니다.

과연 농업 분야 전문가로서 여성농민의 능력이 과소평가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 여성농민이 실질적인 농업 기술을 교육받기 어려운 요인이 교육 시간대의 문제인지, 장소인지, 홍보인지 그 원인을 구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전 수요조사를 통해 여성농민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역량 강화가 필요할 듯합니다. 필히 전문강사의 성인지 교육도 수반해야겠죠.

이렇듯 성인지 관점에서 본 농업 교육은 실로 갑갑한 부분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성평등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일 자체로도 농촌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체감합니다. 기실 농촌의 삶이 언뜻 보면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살펴보면 얼마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사는 집의 모양새부터 저마다의 농법과 재배하는 작물 생리에 맞춘 노동 시간과 규모의 차이, 개인인지 법인인지, 품을 팔며 사는지 등등. 한편으로 세대나 사고방식에 따라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 사는 사람부터 대안적인 삶을 찾아 농촌에 온 젊은이까지 있습니다. 특히 여성농민은 전업농인지, 연고가 있는지, 자녀가 있는지 등에 따라 삶의 구성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하지만 시골에서 이러한 폭넓은 스펙트럼이 잘 보이지 않는 까닭은 없어서가 아니라 소외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농업 교육과 정책에 있어서 성평등을 기초로 삶의 다양성을 적극 반영한다면, 농촌 공동체의 무지갯빛 건강함이 더욱 빛나지 않을까요. 다채로운 무늬의 그림에서 나오는 역동성과 창의성이 농촌 생태계의 가장 큰 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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