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지위원회가 생겼다!

  • 입력 2022.11.21 08:53
  • 기자명 채호진(제주 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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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호진(제주 서귀포)
채호진(제주 서귀포)

작년 ‘LH사태’가 터지고 나서 농지가 얼마나 많이 투기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가를 우리 국민들이 아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농민들은 농지법 개정과 농지위원회 구성을 요구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농지법 개정이 조금은 이루어졌고 농민들이 요구한 농지위원회도 구성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제주도에도 각 시·읍·면에 농지위원회가 생겨났다.

농지위원회는 투기 목적의 농지 구입을 가장 초기 단계에서 막기 위해 만들어진 중요한 기구이다. 하지만 행정의 움직임은 이러한 중요성을 반감시켰다. 위원회 구성 초기부터 문제가 많았다. 농지위원회 위원을 행정편의적·형식적으로 구성하려 하였다. 위원들을 공개적 공모가 아닌 지역의 유명인사(?)들을 넣으려 한 것이었다. 그렇게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떨었던 농지 문제인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처리를 하는 게 어이가 없기까지 하였다. 과연 이렇게 해서 농지위원회가 올바르게 갈 수 있겠는가? 농지위원회에 대한 믿음보다 의구심을 먼저 갖게 하는 이유였다.

이것을 막기 위해 제주도청·제주시청·서귀포시청에 계속 전화를 하고 난리를 피웠다. “왜 농지위원회가 생기게 되었는가. 이 위원회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까지 농지 관리에 있어 행정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비판의 소리를 냈다. 며칠간 계속되는 항의 전화 때문일까. 각 시·읍·면에서는 형식적이지만 농지위원들을 공개모집하였다.

필자는 어렵게 어렵게 농민들이 직접 농지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농민들에게 연락을 하였고 다행히도 농지에 관심이 있는 농민들이 지역 농지위원회에 한두 분씩 이름을 올렸다. 필자도 성산읍에 농지위원으로 이름을 올려 농지위원회 활동을 시작하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필자가 살고 있는 성산읍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모든 농지의 구입에 앞서 농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그 외의 지역은 농지거래 중 일부만 심의를 하게 되어 있었다. 도외 지역 사람의 농지 구입이나 농업법인의 농지 구입 등 너무 한정적인 심의를 하게 되어 있어 과연 농지의 투기화를 막겠다는 농지위원회의 본 취지에 맞는 것인가 의구심을 가졌다.

농지위원회 구성에 있어서도 농업의 중요성과 농지의 중요성을 아는 분들로 모두가 구성되어 있는 게 아니라 농업 자체와 거리가 먼 분들도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분들도 농민의 심정이나 우리나라의 농업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위원회 구성 후 논의 과정을 보면 문제점을 많이 느꼈다. 농지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농지위원회가 왜 만들어졌는지, 우리나라의 농지 현황이나 농업의 현황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있으며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 보니 농지 심의 과정에서의 논의는 활발하지 못하였다. 필자가 보기에는 분명 투기 목적으로 농지 구매를 하려고 하는 게 확실해 보이는데 논의 결과 농지 구입이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의에 올라오는 거래 중 지인들도 많았다. 그러면 논의 과정에서 정보를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수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농지위원들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농지위원회를 구성하고 농지를 투기 세력으로부터 막아보겠다는 근본적인 생각이었다면 그에 대한 준비 과정도 더 많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저 법이 개정되었으니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형식에 얽매어 진행된 것 같다. 지금이라도 모든 농지위원들이 농지위원회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우리 농업에 대해 이해하게끔 만드는 자리가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그래야 우리의 농지를 우리 손으로 지켜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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