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⑳] 지리산 골짜기의 김장시장, 함양 오일장

  • 입력 2022.11.20 18:00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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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전국의 어느 오일장엘 가도 일행들과 늘 아침 9시에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움직인다. 집에서 출발해 사방팔방 다 쳐다보며 지는 단풍까지 즐기며 가도 30분이면 되는 거리에 함양 오일장이 있으니 오늘은 여유 있다. 아침도 챙겨 먹고 차도 한 잔 마시고 가도 좋지만, 일부러 굶고 가기로 한다. 오일장 투어를 시작하면서 그 지역에서 최소한 두 끼는 먹어보자고 약속했으므로. 적당한 식당을 찾는 것도 늘 숙제처럼 있지만, 그것 또한 즐길 일이다.

오늘은 마을에서 맛있는 부엌으로 교육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과 함께 가는 길이라 더 특별한 날이다. 부엌에서 만나 출발해 가는 동안 우리는 김장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김치 이야기도 했다. 정신우 셰프의 ‘먹으면서 먹는 얘기할 때가 제일 좋아’라는 책도 있지만 먹을 때가 아니라도 정말 먹는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좋다.

함양장에 올 때면 자주 찾아가는 식당은 돼지국밥집, 어탕집, 순대국집 정도다. 이들 중 한 곳을 선택해 가려고 일행들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마늘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께서 길 건너 암뽕순대국집이 깔끔하고 맛있다고 권하신다. 그래서 더 망설일 것도 없이 길을 건넌다. 친절한 식당으로 알려진 나름 함양의 백년식당 중 한 곳이다. 기분 좋게 아침을 먹고 다시 오일장 안으로 돌아간다.

 

함양 오일장의 한 상인이 배추·대파·무·알타리·마늘 등 김장채소를 트럭째 실어와 팔고 있다.
함양 오일장의 한 상인이 배추·대파·무·알타리·마늘 등 김장채소를 트럭째 실어와 팔고 있다.

 

속이 적당히 찬 배추들과 상반신이 초록인 무들, 대파, 마늘, 갓, 미나리, 쪽파 등등이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우리 집이나 제철음식학교에서 쓸 김장은 아직 좀더 있다가 할 예정이지만 이것저것 마구 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시장이다. 나는 특히 알타리무에 자꾸 눈이 간다. 이미 평화나무농장의 알타리무를 받아 김치를 담가 놓은 상태지만 알타리김치 좋아하는 사람들 얼굴이 생각나서 더 그런 것 같다.

마을에서 같이 간 분들은 텃밭농사를 하시는 분들이라 다양한 채소보다 김장에 조연으로 쓰일 젓갈 등 해산물에 관심을 보인다. 제일 먼저 청각을 산다. 나도 덩달아 산다. 시장을 도는 동안 내내 다른 상인들의 청각보다 좋고 싸게 샀다는 확인을 받는다. 장을 보는 사람들 누구나 공감할 행동이다. 이것도 재미있다. 나와 겹치는 장 보는 모습을 보면서 웃는다.

생새우가 있을까 해서 한 바퀴 돌아봤지만 인구가 적은 내륙의 작은 오일장이라 그런지 보이지 않는다. 인월의 장에서 만나기 어려운 활꽃게는 있다. 좀 사다가 저녁에 무쳐서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계획에 없는 충동구매는 참는다. 가을이 가기 전에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작업 중 하나가 잉여농산물의 저장인 나는 함양의 오일장에서 삭힌 고추와 삭힌 콩잎, 깻잎을 만나자 참을성이 갑자기 사라진다. 마트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식재료들이다. 그동안 나름대로 삭혀두기는 했으나 갑자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아 말리는 동행들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것저것 좀 챙겨 산다. 이상하게 나는 이런 것들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살 때 엄청 흥분하는 사람이란 걸 느낀다.

김장거리는 제대로 구입도 못하고 왔지만 이상하게 따뜻해져 돌아온 오일장이었다. 도토리묵 맛을 보여주셔야 살 수 있다고 하니 서슴지 않고 묵 한 모를 깨서 먹여주신 분, 10kg이 담긴 상품 호두 자루를 헐어서 호두를 주시면서 먹어보라고 하신 분, 물건값이나 밥값을 현금으로 드렸더니 칭찬하며 덕담을 해주신 분, 자전거를 타신 아저씨의 뒷모습,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주고 포즈까지 취해주신 분들 외에도 수많은 온기가 남은 시장이었다. 친숙한 곳이어서 더 따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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