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옹기⑥ ‘숨 쉬는 옹기’의 조건

  • 입력 2022.11.20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기술자들에 의해 물레에서 모양이 완성되어 나온 옹기는 그늘에 두어 건조해야 한다. 그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작업 속도를 빨리 하기 위해서 햇볕에다 내어 말리기도 했다. 그늘에서 말리면 48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햇볕에서는 대여섯 시간 만에 말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옹기가 햇볕을 고루 받도록 방향을 바꿔주거나, 너무 강한 햇볕을 받아 금이 가는 일이 없도록 볏짚이나 가마니로 덮어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술자 두 사람은 물렛간에서 성형작업을 마치고는 곧장 퇴근해버렸으므로, 그 뒤의 공정은 신참 기술자인 정윤석이 공장 주인인 외삼촌을 도와 해결해야 한다.

-잿물을 맹글어야 할 것인디, 재하고 약토는 준비를 해 뒀겄제?

-어제 저녁부터 소나무 화목을 때서 재는 충분히 맹글어 놨고, 약토도 캐다놓은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응께 체로 곱게 치기만 하면 될 것이구먼이라우.

“장작에 불을 붙여서 사그라질 때까지 오래 때면 재만 남을 것 아니겠어요? 그 재를 체로 치면 고운 분말이 나와요.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이 약토(藥土)인데, 나뭇잎이 썩어서 퇴적된 일종의 부엽토예요. 철 성분이 함유된 그 흙을 파와서 역시 체로 쳐서 고운 가루를 내지요. 그 둘을 일정한 비율로 섞어서 물에 풀어놓은 것이 바로 잿물이에요.”

이렇게 만든 잿물을 옹기의 안팎에 정성들여 바른다. 정윤석 씨에 의하면 그 시절엔 ‘천연잿물’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1970년대에 플라스틱 용기들이 대거 보급된 뒤부터, 옹기의 겉면을 도자기처럼 반질반질하게 만들어야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아서, 광명단이나 망간 등의 화공약품을 약토에 섞어 만든 유약(柚藥)을 잿물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화공약품을 칠한 옹기는 천연잿물을 바른 옹기와는 달리 일정 온도 이상 올라가면 표면에 칠한 약품이 증발해버리니까 불을 적당히만 때거든요. 그러니 겉보기에는 맨질맨질 윤이 나서 좋아 보이지만, 사실 그 옹기는 겉만 익었지 속은 덜 익은 거예요. 천연잿물을 사용해야 속까지 잘 익어서 ‘숨쉬는 옹기’가 나오는 법이지요.”

하지만 점차 기술이 향상돼서, 천연잿물로 구운 옹기도 강한 광택이 나기도 하기 때문에, ‘광택’ 하나로 좋은 옹기 나쁜 옹기를 가르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잿물 바르는 작업이 끝나고 다시 건조된 옹기는 가마가 있는 곳까지 운반되는데, 마을의 남녀노소가 다 몰려나와 옹기 운반 작업을 돕는다. 옹기를 만드는 집마다 모두 가마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몇 집이 어울려 가마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했다. 옹기사업을 하는 주인들은 품앗이 삼아서 다른 사람들의 옹기 굽는 작업을 번갈아 도와주곤 했다.

옹기를 구울 때, 옹기를 가마 안에 어떻게 배치하여 놓아두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경험 많은 기술자가 가마 안에서 밖을 향해 소리치지요. 큰독부터 먼저 들여라, 옴박지 들여와라, 오가리 다 들어왔으면 중독을 갖고 오너라….”

항아리 중에서 큰놈을 큰독이라 하고 중간치는 중독이라 부른다. 옴박지는 쌀도 씻고 야채도 씻던 납작한 그릇, 즉 함지박 옹기를 일컫는 전라도 사투리다.

옹기 공장 주인들이 가장 긴장하는 때는, 가마 부근에다 옹기를 모두 날라 놓긴 했으나, 아직 가마 안에 들여놓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비가 오는 경우다. 그런 때면 아침이든 저녁이든 한밤중이든 상관없이 동네사람 모두가 총동원된다.

-주민 여러분에게 긴급하게 알려디리겄습니다! 시방 소나기가 징하게 내리고 있는디, 정팔봉 씨네 옹기가 가마 배깥에서 비를 맞고 있응께, 이 방송을 듣는 즉시로 남녀노소 개릴 것 없이, 전부들 나와서 팔봉씨네 옹기를 조깐 운반해줘야 씨겄습니다이. 아, 아….

이장이 긴급 상황을 알리면 사람들은 잠옷 바람으로 뛰어나와 마치 제 일인 듯 옹기 나르는 일을 거들곤 했다. 당시만 해도 옹기가마가 지붕도 없이 그냥 노천에 있었던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