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 따라 생활건강] 왜 맥을 잡지 않나요

  • 입력 2022.11.13 18:00
  • 기자명 허영태(포항 오천읍 허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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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태(포항 허한의원 원장)
허영태(포항 허한의원 원장)

한의사는 사람의 맥을 턱 잡으면 무슨 질환에 걸려 있는지, 몸 상태는 어떤지 척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맥 잡아보러 왔다는 분이 간혹 계십니다. 각종 드라마, 사극 등을 통해 맥만 잡고 진단명을 말하는 한의사들의 모습을 보아왔으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겠습니다.

심지어 동남아 관광지에서는 명색이 한의사라는 양반들이 맥 잡는 척하고 환자를 유인해 결국 고가의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사기를 버젓이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반인의 경우 ‘한의사들은 맥만 잡으면 진단을 해낼 수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소 도발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2022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다른 아무런 정보 없이 환자의 맥만 잡고 진단을 정확히 할 수 있는 한의사가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아직 공부가 부족하고 맥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니 다른 한의사분들도 그럴 것이라는 건방진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원래 맥진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진단방법과 합치되어야 그 정확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원래 한의학에서 진단은 사진합참이라고 하여 기본적으로 네 가지 큰 진단방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망문문절(望聞問切)이라고, 환자를 보고, 듣고, 물어보고, 이후 직접 만져봐서 진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중 절진 진단방법은 만져보는 것인데, 아픈 곳을 확인하고 맥을 잡아보고 하는 것입니다. 즉 맥진이라는 것은 한의학 진단 부분 중에서도 절진의 일부입니다.

심장의 박동을 느끼는 맥진은 과거 독특하고 의미가 있어 맥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옛날 한의사들은 맥을 느끼는 손끝의 감각을 높이는 수련까지 했습니다. 머리카락 한 가닥을 손가락으로 느껴본 다음 그 위에 종이를 한 장 얹고 다시 느껴보고 다시 또 한 장 더 올려 머리카락을 만져보는 식으로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한의사분이 계시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한의대생들은 간혹 호기심에 연습해보기도 합니다. 저도 학생 때는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임신 여부도 과거에는 맥을 통해 확인했으나 현재는 약국에서 임신키트로 더 정확히 확인 가능합니다. 용불용설이라고, 사용하면 능력이 커지고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기 마련입니다. 현대의학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그 방향에서 해결하고 맥진은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사진합참 일부로서의 맥진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형색성정 건실·허약 여부와 맥이 일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저의 일례로 한의원 주변 어르신이 땀을 뻘뻘 흘리며 오셔서 “원장, 뭔가 이상하다”시길래 맥을 잡아보니 마치 맥이 부글부글 끓는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119를 통해 응급실로 보내 드렸는데 이후 그분은 계속 그 일을 감사해 하고 계십니다. 뇌혈관에 문제가 생겼던 것인데 당시 그런 맥은 보통의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이상하게 느꼈을 맥이라 판단합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손목 맥을 부여잡고 뭔가를 찾아내기 위해 한참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은 현재 진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환자가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현재 증상은 어떤지, 필요하다면 일상, 직장에서의 생활패턴 등등을 물어보고 들어보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간단한 질환에 한의사가 맥을 잡지 않는다고 너무 섭섭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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