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옹기⑤] 불량품 옹기는 누가 책임지나

  • 입력 2022.11.13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견습생이 처음으로 물렛간에 들어가서 시험 삼아 만들어보는 옹기가 바로, 물 두 되 들이 꼬마 항아리인 오가리라 그랬잖아요. 그걸 처음으로 모양 갖춰서 완성하는 순간, 막 흥분이 되고 자신감이 생겨요. 어, 이게 정말 되네? 신기하지요. 금방 기술자가 다 된 기분이거든요. 그런데 진짜 기술자들이 쓰윽 한 번 살펴보고는, 이걸 옹기라고 만들었느냐고 견습생 머리에다 팍 짓눌러서 ‘오가리 감투’를 씌워버리잖아요. 그래놓고 자기들끼리 막 깔깔대며 웃어요. 물론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지요. 자기들도 그 과정을 다 거쳤으니까. 나도 첫날 진흙투성이 ‘감투’를 머리에 썼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요. 조만간 나도 기술자가 될 테니까.”

옹기장이 정윤석 씨의 초년시절에 대한 회고담이다. 하지만 견습생 정윤석의 ‘조만간’은 결코 조만간이 아니었다. 기술자들이 입을 모아 “옹기 기술을 제대로 배우려면 오가리 감투를 수십 번은 써야 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그저 해본 소리이겠거니 했는데, 항아리 만드는 기초기술이라 할 그 오가리를 만드는 데에만 1년 남짓이나 걸렸다. 하지만 1년 만에 그 작은 항아리 만드는 일을 일정 수준으로 해냈다는 정도지, 결코 훌륭한 기술자가 되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외삼춘, 이만하면 인자 오가리 맹그는 기술은 졸업해도 되겄지라우? 합죽이도 안 났고….

견습 생활 1년여가 지난 어느 날, 정윤석이 드디어 자신이 빚은 오가리 시제품을 공장 주인인 외삼촌 앞에 당당히 내밀었다. 외삼촌이 빙긋 웃더니 조카의 오가리를 저울에 올렸다.

-눈금을 잘 봐라. 시방 니가 맹글어온 오가리는 1천3백 그람이제? 이번에는 내가 지금 막 완성한 오가리를 올려보자.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저울 눈금을 큰소리로 한 번 읽어봐라.

-9백80…그람….

정윤석의 목소리가 잠겨들었다. 바로 그 320그램의 차이가 숙련공과 초보자의 차이였다.

정윤석은, 아래쪽이 무너지거나 혹은 위쪽이 쭈그러들어서 ‘합죽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옹기를 너무 두껍게 빚어놓은 것이다. 얇으면서도 두께를 고르게 하는 것, 그것이 모름지기 옹기 만드는 기술이다. 항아리 중에는 어른 가슴높이가 넘을 정도로 커다란 것도 있는데, 그런 대형 옹기의 경우 물레판에 옹기를 올려놓고 한쪽 발로 돌리기도 힘에 겹지만, 무엇보다 옹기가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주저앉아버리는 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형 항아리를 만들 때, 아래쪽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높이를 키워 올리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어느 순간에 폭삭 주저앉아버려요. 그래서 전체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아래 부분을 말려줘야 하거든요. 보통은 깡통에다 숯불을 피운 다음에 그 깡통을 항아리 속 바닥에 놓아서 말리지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윤석도 차차 옹기 기술자로서의 경륜을 쌓아갔다.

그렇다면 옹기공장 기술자들은 자신의 노역에 대한 대가를 어떤 방식으로 지불받았을까? 작업이 끝나자 정윤석의 외삼촌이 수첩을 들고 와서는 기술자들의 실적을 점검한다.

-오늘 김 씨는 오가리 두 개에다, 다섯 말들이 항아리가 세 개, 열 말들이 큰 항아리 두 개를 만들었응께 어지께보담은 실적이 괜찮네. 그라고 박 씨는 오가리 두 개에다 중간치 항아리 두 개, 그라고 열 말짜리 큰놈은 하나뿐이네? 이렇게 일해 갖고 처자식 먹여 살리겄어?

옹기 기술자들의 경우 자신이 만든 옹기의 숫자에 따라 고용주인 공장 주인으로부터 받아갈 수당이 달라진다. 물론 옹기의 크기에 따라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값이 다른 만큼, 기술자에게 배분되는 수공비도 차이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물레에서 옹기의 모양을 완성하여 공장 바닥에 옮겨놓는 순간 기술자의 임무는 끝이 나고, 그 다음에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굽고 하는 따위의 뒷공정은 전적으로 사업주인 옹기공장 주인의 몫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기술자는 점토 덩어리로 옹기의 모양만 만들어 주고 나서 수공비를 받으면 그만이고, 건조 과정에서 금이 가거나 깨지거나 하더라도 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