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민비 조정과 윤석열정부

  • 입력 2022.11.13 18:00
  • 기자명 김효진(전북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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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전북 순창)
김효진(전북 순창)

현재 한국 사회는 총체적 위기다. 멀쩡한 청와대를 놔두고 새롭게 집무실을 옮긴다며 막대한 세금과 국가역량을 불필요하게 소진했다. 나라 밖 외교무대에만 나서면 국제적 망신을 국민들에게 안겨주고, 국익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일련의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국내 정치는 야당을 노골적으로 탄압하며 국회 기능마저 무력화시킨 채 해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 역시 심각하다. 소수 초부자들의 세금을 줄이기 위해 서민들의 예산은 노인, 아동, 소상공인 할 것 없이 대폭 삭감하였고, 국유재산과 공공기관 자산 매각 계획이 드러나면서 자칫 심각한 국부 유출이 될까 심히 우려스럽다. 농민들은 전례 없는 쌀값 폭락과 생산비 폭등으로 이미 영농의욕이 바닥난 상태다.

한반도의 위기는 또다시 시작되었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선언할 때부터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문은 이미 닫혔다. 북쪽은 새로운 출구 모색을 위해 미사일을 쏘아대고, 남쪽은 미국과의 연합 공중훈련으로 북을 위협하고 있다. 끝내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와 공중훈련을 연장하며 한반도는 강 대 강 대치라는 악순환 속에서 전쟁 촉발의 위기에 처해 있다. 더욱이 최근엔 미국이 인도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지지하는 모양새를 갖자, 이에 부응하듯 한미일 군사 삼각동맹을 강조하고 노골적인 친일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윤석열정부에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라는 목적은 애초부터 매뉴얼에 없는 듯하다

급기야 최근에는, 이태원에서 축제를 즐기던 청춘들이 허망하게 사그라졌다. 치안과 안전이 필요한 공간에 국가는 없었다.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장관까지 하나같이 남 얘기하듯 한다. 국무총리란 자는 대형 참사와 관련, 외신기자들 앞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농담을 던져 아연실색케 했다. 사과 대신 국민적 분노와 저항을 누르기 위해 생뚱맞게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선 공무원에게는 근조 리본마저 뒤집어 달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해 불가의 상황이자, 무능과 무책임을 넘어서 무정부 상태라 아니할 수 없다. 사회 각 분야에서 퇴행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노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하며 힘겹게 사는 국민들은 허탈과 분노로 아우성치고 있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이다.

요즘 나라 꼴을 보면 19세기 후반 사면초가에 놓여 있던 조선을 보는 것만 같다.

민비 민자영은 최익현의 상소로 대원군이 물러난 1873년부터 경복궁에서 시해당하기 전까지 고종을 앞세워 조선을 실제로 통치하였다. 호시탐탐 조선을 삼키고자 입맛 다시는 열강의 위협 앞에 민씨 척족 세력은 권력 맛에 취한 채 국가 경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민씨 일가가 중앙 요직부터 지방 관직까지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으며 매관매직과 부정부패로 국가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특히 나랏돈을 제집 금고처럼 사사로이 탕진하였다. 국가 근대화에 유용하게 쓰여야 할 국고가 고종과 민비 일족들에 의해 흥청망청 소진되고 만 것이다.

일례로, 민비는 자신과 친족의 병을 치료해준 알렌이라는 의사에게 엄청난 돈과 선물을 주고 훗날에는 금광 채굴권마저 주는 황당한 짓을 하고 만다. 더구나 무속에 빠진 민비는 왕실 종친이나 공신에게나 주었던 군호를 무당에게 내리는가 하면, 나라가 태평해진다는 무당의 말을 듣고선 금강산 일만 이천 개의 봉우리마다 쌀 한 섬과 돈 백 냥씩을 바쳤다. 임오년에 군병들은 누적된 불만에다 13개월 치 월급마저 주지 않자 군란을 일으켰고, 곧이어 갑신정변이 났다.

임금은 있으되 정치가 없는 틈을 타 외세는 조선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군란과 정변, 그리고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민비는 백성 잡자고 외국군대를 끌어들였고 외세에는 절호의 기회였다. 민비는 가히 조선의 멸망을 앞당긴 장본인이다.

역사를 보면 현재가 보이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옛날 민비 세력을 빨리 끌어낼 수만 있었다면 하는 가정은 부질없음을 안다. 하지만 적어도 외세를 이 땅에 ‘낙지발이 뿌리 늘이게’ 하는 어리석은 짓만큼은 막아냈다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전봉준을 위시한 동학농민군은 혹여 외세에 침략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전주화약을 맺고 전주성에서 자진 해산하였다. 하지만 무능한 조정과 달리 무정부 상태인 호남 일대에 집강소를 두어 직접 행정과 치안을 챙기며 백성들을 보호하였다. 오늘날, 전국의 농민들 역시 망가진 농촌을 복구하고 농업을 되살리고자 동학농민군의 척양척왜·보국안민의 정신으로 일어서고자 한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을 뒤로하자. 곰나루 우금치 농민군의 마지막 절규와 함성으로 11월 16일 서울로,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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