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옹기④ ‘오가리 감투’를 썼다!

  • 입력 2022.11.06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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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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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예닐곱 살 무렵에, 삼촌네 옹기공장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던 정윤석이 담당했던 허드렛일들 중에는, 옹기를 만들기 위해 공장으로 반입하여 쌓아놓은 흙더미(점토)를 관리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비닐이 없던 시절이라, 공장에 쌓아놓은 점토를 가마니 등속으로 덮어놓고는, 수시로 물을 떠다 뿌려서 습기를 유지해줘야 했다.

흙 속의 불순물을 골라내기 위해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쇠붙이로 흙더미의 흙을 일일이 깎아내는 ‘깎기 작업’을 하고, 그렇게 깎아낸 흙을 뭉쳐서 뚝메라고 불리는 나무 메로 쳐서 다지고, 납작하게 다져진 그 흙 반죽을 가래라는 나무 연장을 사용하여 규격에 맞춰 잘라 놓는다. 이렇게 잘라진 점토덩어리가 바로 옹기제작에 쓰일 최종재료인 ‘질덩이'다. 견습생인 정윤석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공장 주인인 정윤석의 외삼촌을 비롯해서 세 명의 옹기 기술자들은, 다 제 가끔의 물렛간 하나씩을 갖고 있었다. 땅을 적당한 깊이로 파고서 거기다 물레를 앉힌 다음에, 발로 살살 돌려서 옹기 성형작업을 하는 그 공간을 물렛간이라 일컬었다.

“나라고 왜 물레를 돌려서 옹기 모양을 빚어보고 싶은 욕심이 없겠어요. 그런데 기술자들은 자기 물렛간에 딴 사람이 들어가 앉는 걸 싫어해요. 그렇다고 마냥 허드렛일만 할 수는 없잖아요. 어느 날 두 기술자가 퇴근하고, 삼촌은 옹기 굽는 가마에 올라가고 난 뒤에, 물렛간에 살짝 들어가 앉아서 나도 옹기 성형을 시도해 봤지요. 막상 해보니까 별거 아니더라고요.”

정윤석이 어깨너머로 익혀둔 솜씨를 발휘해서 난생 처음으로 옹기 성형 작업을 시작한다.

-자, 점토 덩어리를 일단 요렇게 탁탁 쳐서 옹기 바닥을 만든다, 이 말이제? 좋았어! 그럼 어디 나도 물레라는 걸 한번 돌려보끄나. 오, 좋아, 좋아. 야, 이거 기가 맥히네 그려. 거, 봐. 나도 요렇게 잘 만들 수 있당께. 벨 것도 아니구먼 즈그들만 기술 있다고 뻐기고 있어.

처음 해본 성형작업이었는데 생각보다 술술 잘 풀렸다. 그는 스스로가 그 방면에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잠깐 만에 작은 항아리 하나가 모양을 갖춰갔다. 그런데 만들어놓고 보니 전체적으로 너무 두꺼웠다. 항아리의 두께를 고르게 뽑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에서 받치는 손과 바깥에서 만지는 손의 감촉으로 두께를 가늠해서 조절해야 하는데, 그 기술이야말로 하룻강아지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어어? 아이고, 안 돼! 쯧쯧쯧, 결국 합죽이가 나부렀네.

항아리의 두께가 고르지 못한 경우, 어느 순간 두께가 얇은 쪽으로 맥없이 쭈그러져 무너져버리는데…그런 경우 업계 종사자들 은어로 ‘합죽이가 났다’고 말한다.

정윤석이 저녁마다 몰래 물레질을 한다는 걸 눈치 챈 외삼촌이, 어느 날 그를 불러 세웠다.

-틈나는 대로 내 물렛간을 잠깐씩 빌려줄 것잉께 시방부터 차근차근 배워봐. 우선 오가리 만드는 것부텀 시작을 해봐라. 그 대신 잘 못 만들면 오가리 감투 각오해라이.

-오가리 감투라는 거이 뭔 말이다요?

-금방 알게 될 것잉께 얼릉 오가리나 만들어 봐.

‘오가리’란 아래위가 좁고 배가 부른, 물 두 되 들이의 작은 항아리다. 장독대에 올라앉은 항아리들 중에서 가장 키가 작은 놈이다. 보통은 고추장을 담아 둔다. 옹기 만드는 기술은 크기에 비례하므로, 큰 항아리일수록 만들기도 어렵다. 따라서 초보자는 오가리 만드는 기술부터 익혀야 한다. 그럼 정윤석의 첫 작품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기술자인 그의 외삼촌이 정윤석이 만든 오가리를 들고 요리조리 살펴본다.

-잘 봐라. 여그는 얇은디 여그는 더 두껍제? 딱 봐도 좌우 균형도 안 맞고…. 요렇게 만들어서는 밥 빌어먹기 딱 좋겄네. 아나, 오가리 감투나 써라 요놈아!

외삼촌이 진흙으로 빚은 오가리를 거꾸로 들더니 정윤석의 머리위에 씌우고는 힘껏 짓눌렀다. 얼굴이 흙투성이가 된 정윤석이 비명을 지르며 캑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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