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 입력 2022.11.06 18:00
  • 기자명 현윤정(강원 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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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윤정(강원 홍천)
현윤정(강원 홍천)

저희 가족은 제가 초등학생일 때 지금 살고 있는 홍천 모곡면으로 이사를 왔고, 저는 이곳에서 초·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가 없는 관계로 타지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2017년까지 직장 생활을 하다가 마을로 돌아와 창농을 하고, 마을사무장으로, 의용소방대원으로, 4-H군회장으로, 새마을회원으로, 각종 청년농업인단체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구절절 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제가 이곳에서 지난 5년간 어떻게 활동했고, 정착을 위해 애썼는지를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쌓아온 지역 인맥은 저에게 큰 재산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제가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은 사업을 키우고 싶거나, 자리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마을공동체에서의 존재감, 함께 살아온 가족, 그리고 가족이나 다름없는 마을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만족감과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지난 4월 결혼한 새색시입니다. 저희 부부는 결혼식을 마침과 동시에 농번기를 맞이했습니다. 신랑은 화천에서 하우스 친환경고추 농사를, 저는 홍천에서 옥수수와 쌀농사를 짓기 때문에 각자의 자리에서 농번기를 지냈습니다. 틈틈이 데이트를 즐기면서 신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봄·여름에는 하우스의 특성상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운 신랑 대신 제가 신랑집으로 갔고, 지금은 신랑이 하우스를 정리하는 시기를 맞아 제가 사는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통화를 자주 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부터 저녁에 잠들기 직전까지 무엇을 먹고,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오늘 통화하는 신랑은 기분이 좀 안 좋다면서 주변에서 들은 얘기를 전했습니다. 요 며칠 주변 지인들이 ‘너 결혼한 거 맞냐? 너 와이프 있는 거 맞아?’ 라고 이야기하며 놀렸다는 겁니다. ‘결혼을 했으면 와이프를 빨리 데리고 와야지’라고 하는데, 조금 서글퍼져서 간밤에 혼자 술을 조금 마셨다고 말하는 신랑 목소리가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저는 신랑에게 지금처럼 사는 방식이 싫은지 물었고, 신랑은 물론 함께 있을 때 가장 좋지만, 이런 삶도 너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다만 주변에서 ‘이럴 거면 왜 결혼했냐’고 하니까 조금 속상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우리는 만날 수 있으니 다른 사람 말에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위로를 하고, 전화를 끊고 마을에서 일을 하는데 마주친 어른들께서 “신랑한텐 언제가?”라고 물으시면서 “가서 신랑 밥을 차려줘야지”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나…’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신랑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신랑이 잘 먹고 좋아하는 것을 볼 때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하지만 제가 결혼한 이유가 신랑과 맛있는 밥을 매끼 먹고 싶어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랑과 저는 일상 속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고 희로애락을 나누고, 고민과 희망을 나눕니다. 우리 부부는 그 속에서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오늘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아이들을 다 키워낸 언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왜 나는 어른들의 이런 말들이 슬프고, 별것 아닌 일을 별일인 것처럼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언니는 내게 별거인 게 맞는 것 같다면서, 자기도 왜 나한테 신랑한테 안가냐고 물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언니 자신도 모르는 새에 남성중심의 사고를 하게 된 걸까요? 신랑과 시댁이 너무 소중해서 그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 걸까요? 신랑과 시댁을 위하는 일은 귀한 일이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일에 성별의 우선이 있을까요? 그저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맞게 배려하고 실천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저희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농번기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귀한 데이트를 즐기고, 농한기를 맞아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김장을 끝으로 함께 전국 일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달이나 두 달 정도 온천도 다니고 다른 지역에 사는 지인들과 만나면서 즐겁고 여유롭게 여행을 다닐 계획입니다. 제가 신랑에게 가고, 신랑이 저에게 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틈나는 대로 함께 있을 것이고 혹시나 몸이 떨어져 있는 순간들에도 삶을 나눌 것입니다. 누구 하나라도 외로울까 염려해주시는 마음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살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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