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농민들, 이주 농업노동자와 함께 사는 길 찾다

비아캄페시나 온두라스 국제회의 참가기

  • 입력 2022.11.06 18:00
  • 수정 2022.11.06 23:18
  • 기자명 조병옥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의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병옥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의장
조병옥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의장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온두라스 테구시갈파에서 ‘이주민 및 농업노동자’를 주제로 국제회의가 열렸다. 비아캄페시나 주최로 열린 이번 회의는 많은 나라에서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비자 문제와 코로나 등으로 절반 정도가 불참한 가운데 진행됐다. 멕시코·콜롬비아·온두라스·과테말라·모로코·튀니지·칠레 등을 비롯,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유일하게 참여해 20여개국 대표가 모였다.

첫날 회의에선 유엔농민권리선언을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화상으로 참여한 인도네시아농민노동협회 자이날 국제조정위원(ICC)과 스페인의 안드레아씨가 각각 발표했다. 유엔에서 농민권리선언문을 만들어 낸 것은 큰 성과이며 그럼에도 한계가 명확한 선언문의 현실화를 투쟁과 연대를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 나라별로 농민이든 연대 단위든 실현 가능한 구체안을 확정하고 그것을 힘으로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둘째날부터는 이주민 및 농업노동자 문제에 대해 집중토론하고 대안이 논의됐다. 온두라스 농민대표의 발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큰 피해를 본 농업노동자들이 인플레이션으로 또 한 번 고통을 겪었는데, 얼마 전 일어난 홍수피해까지 겹쳐 임금도 못 받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조직 간의 연대, 지방정부 및 중앙정부 압박, 새로운 리더십 구축 작업 등이 진행되고 있다.

 

비아캄페시나는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온두라스 테구시갈파에서 ‘이주민 및 농업노동자’를 주제로 국제회의를 열었다.
비아캄페시나는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온두라스 테구시갈파에서 ‘이주민 및 농업노동자’를 주제로 국제회의를 열었다.

 

니카라과에서 온 에르가르도씨는 농업노동자와 이민자에 대한 권리 보장을 다루는 국제노동기구(ILO)의 141호와 143호 조항에 대한 현실화 방안을 중점 발제했다. 라틴아메리카의 농업노동자는 도시노동자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며, 자본주의 경쟁 구도에 몰려 계급 간 수평폭력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티의 경우는 좀 나은 중남미로, 중남미의 이주민은 북미로 발길을 옮기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경우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등에 모여 지중해를 거쳐 유럽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해상 전복사고나 경찰·군대의 폭력 등으로 사망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의 상황은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의 자료를 토대로 간략히 설명했고, 한국의 실태도 설명했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이주민 및 이주 농업노동자들의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그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위험하고 가장 힘든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제대로 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우리는 팬데믹이 오자 그들을 유령화시켜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대하고 있다. 이 와중에 생활공간의 문제, 예컨대 비닐하우스 내 위생 및 온‧냉방 문제·임금 떼먹기 및 체불임금 문제·성폭력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농장주들은 “왜 우리가 악마화되어야 하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위에 열거한 현실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문제는 아프리카 및 중남미의 이주민 상황은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의 계급모순을 포함-목숨을 걸고라도 이주할 수밖에 없는-한 반면 아시아의 경우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일정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이러한 모순의 차이로 인해 아시아의 쟁점은 그 수위가 상대적으로 낮아 크게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외 이주민 및 농업노동자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 지역별 국가별 연대·이민자 플랫폼 활용 방안·국제적인 네트워크 형성·이주민에 대한 홍보와 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또 우리 안에 있는 이민자를 바라보는 시각의 교정도 요구됐다. 즉 그들을 가난하고 불쌍하며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문제이며 자본주의 질서에 대항하는 저항의 증거로서 그들의 행동은 탈자본주의 엑소더스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민은 애초 정치적 행위이며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경계(장벽)를 넘어서는 대단한 행동가들이며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인권이 있다는 인식의 통일을 가졌다. 향후 이 주제는 오는 12월 네팔에서 열리는 비아캄페시나 ICC 회의에서 확인받게 된다.

지구 반대편에서 진행된 이번 회의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도 크다. 노동의 밑바닥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외국인노동자 문제에 대해 우리 농민은 혹은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는가?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인권이 있고, 감정이 있고, 고향에 자식이나 부모 형제가 있다. 조금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것 말고 다른 게 무엇이 있나? 그들에게 우리 농민 고용주는 과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비아캄페시나는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온두라스 테구시갈파에서 ‘이주민 및 농업노동자’를 주제로 국제회의를 열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