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격리곡 품종 제한에 현장 농민들 “그림의 떡”

국회·시의회서 지적 잇따라
농식품부, 현장 의견 검토 중

  • 입력 2022.11.04 10:33
  • 수정 2022.11.06 07:59
  • 기자명 김태형·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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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정부가 쌀 수확기 수급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2022년산 쌀 시장격리에 나선 가운데, 현장에서는 시장격리 대상 품종 제한 완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농식품부)는 현장 의견을 듣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7일부터 2021년산 쌀 10만톤과 2022년산 쌀 35만톤에 대한 시장격리 매입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쌀 수급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올해 수확기 중 쌀 45만톤을 시장격리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먼저 2021년산 쌀 10만톤은 지난달 19일 최저가 경쟁입찰 결과, 8만톤만 낙찰됐다. 남은 2만톤은 2022년산 35만톤과 함께 공공비축미와 동일한 방식으로 연내 매입을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공공비축미 가격은 통계청에서 조사한 수확기(10~12월)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농민들은 쌀값 안정을 위해 수확기에 공공비축미 가격으로 시장격리에 나설 것을 정부에 요구해왔다.

품종 제한, 농가 참여 어려워

문제는 시장격리 매입대상도 공공비축미와 마찬가지로 시·군별로 사전 지정된 2개 이내 품종으로 제한되면서, 농가들이 참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비축미는 천재지변 등 비상시에 대비해 정부가 시장가격에 매입해 비축하는 양곡으로, 시장격리곡과 별도로 지난 8월 31일부터 2022년산 쌀 45만톤에 대한 매입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종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북도연맹 의장은 지난 1일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농민들은 공공비축미에 응할 양이 정해져 있어서 시·군마다 지정된 품종을 배정된 물량에 맞춰 농사짓고, 나머지는 다른 품종을 선택해서 짓는다”며 “그런데 이번 시장격리곡도 지정된 품종만 매입하겠다고 하니 농민들에게는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라고 비판했다.

이대종 의장은 이어 “현장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조치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었다”며 “농식품부도 이대로는 격리 물량을 채울 수 없겠다 싶어서 우선 시·군별로 배정된 물량 중 지정된 품종 수매를 먼저 마치고 부족한 물량에 대해서는 품종 제한을 없애고 격리하겠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뒤늦게나마 이렇게 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문제는 이미 많은 농민이 본인들의 벼를 (시장격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시장격리에 응하고 싶어도 응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5일 각 읍·면사무소에 나락을 쌓은 정읍시 농민들 역시 시장격리 품종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은 “시장격리를 하는 목적 중 하나가 산지에 남는 나락을 격리해 처분하겠다는 것인데, 지금처럼 쌀값이 최대치로 떨어져 있는 와중에 품종까지 제한해 매입하면 시장격리 대상 품종을 많이 재배한 농가에만 특혜 아닌 특혜를 주게 되는 거다”라며 “대립종·소립종으로만 나눠 매입하거나 아예 품종과 관계없이 매입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대로라면 현장에선 시장격리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25일에는 전북 남원시의회가 제254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이기열 의원이 대표 발의한 ‘쌀 시장격리 품종 제한 완화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다.

남원시의회는 건의안에서 “전북을 기준으로 보면, 시·군에서 지정한 ‘신동진’ 또는 ‘조담’ 품종과 그 외 품종의 생산량 비율이 4대 6에 육박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농식품부의 정책은 ‘신동진’·‘조담’ 이외 품종의 쌀을 재배한 농업인들의 초과 생산량에 대한 시장격리 기회조차 박탈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로 인해) 초과 생산된 쌀 전량의 처분에 대한 부담을 농민 스스로 감당하며,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지역농협과 정미소에 싼 가격으로 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격리 물량 충족할지도 우려”

“품종 제한 없애 혜택 나눠야”

이는 전북 지역에만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이근혁 전농 정책위원장은 “공공비축미 대상 품종은 질이 높은 대신 수확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농민들은 공공비축 수매할 양만큼만 해당 품종을 농사짓고, 나머지는 수확량이 더 나오는 품종을 선택한다”며 “이미 농사를 다 지었는데, 시장격리도 공공비축미 대상 품종으로 한정한다고 하니 현장에서는 시장격리 물량을 채울 만큼의 품종이 없다고 하고 농민들은 시장격리에 낼 품종이 없다고 아우성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품종을 자체 수매 형태로 확대해야 한다”면서 “이미 산물벼를 농협에 낸 사람들에 대해서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7일 열린 농식품부 종합국정감사에서 충남 당진을 지역구로 둔 어기구(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공공비축미 대상이 아닌 품종을 재배하는 농가는 시장격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로 인해 격리 물량을 충족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품종 제한을 없애 더욱 많은 농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당시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품종 제한은 품질 고급화를 통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함이라면서도 “최근 확인해보니 시·군에서 두 개 품종 이외에 더 좋은 품종이 있다면서 공급을 확산시킨 게 있는 것 같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보완 검토를 해보겠다”고 답했다.

농식품부 “방안 검토 중”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 3일 “현장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다”며 “기존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것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를 지금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량이 부족하면 품종 제한을 완화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지 묻는 질문에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원칙을 수립한 것은 아니다”라며 “의견을 취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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