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옹기③ 옹기, 같이 만들어보실래요?

  • 입력 2022.10.30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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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1957년 무렵, 전남 강진군 칠량면 봉황마을의 옹기공장에서 옹기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 마을엔 옹기공장이 무려 스물다섯 군데나 있었다. 그 많은 공장들이 한 마을에 모여 있었다면 가히 공단(工團) 규모가 아닌가 하겠지만, 한 공장에 종사하는 직공이 겨우 서너 명에 불과했으니…말하자면 가내수공업 수준이었다. 그럼 작업현장으로 가보자.

-윤석아, 이거 메질 조깐 다시 해야겄다. 메 좀 갖고 오너라.

-예, 기술자님, 메 여그 갖고 왔습니다이.

-어이 윤석이! 나 여그 항아리 하나 다 맹글었응께, 저 짝으로 조깐 들어다 놓드라고. 찌그러지면 안 됭께 조심해서 옮겨야 되네.

-걱정 마사랑께요. 으이차, 이짝으로 요렇게 옮겨서 줄 맞춰 놓으면 되는 것이지라우?

-윤석아, 유약 작업할 잿물을 맹글어야겄는디…약토(藥土) 파놓은 것이 어디 있드라?

-아, 예, 외삼춘. 약토는 저 짝 구석에 있응께 금방 갖고 오겄습니다이.

이 소규모 옹기공장에서 기술자들의 시중을 드느라 시계불알처럼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이 소년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 정윤석이다.

“사실은 내가 서자 출신인데, 일찍이 큰아버지 댁에 양자로 가 있다가 취직이라도 해볼까 하고 무작정 상경을 했었지요. 아이고, 서울에서 별 고생을 다 했어요. 못 살겠더라고요.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외삼촌을 찾아서 여기 봉황리에 내려왔다가 이 일을 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그 공장에 옹기 기술자는 외삼촌을 포함해서 세 명이었지요. 두 사람은 고용된 사람이고요. 사실 나는 장차 옹기 기술자가 되겠다, 이런 생각 안 했거든요. 그냥 이거 배워 두면 머슴살이 하는 것보다는 낫겠다, 그런 생각 가지고 잡일꾼으로 들어온 것이었는데….”

정윤석 씨가 들려준 바에 따르면, 주인에 의해 고용된 옹기 기술자는 정해진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수당을 받았다. 크기별로 차이가 나지만 옹기 하나 만드는 데 얼마, 하고 정해져 있어서 어느 기술자가 몇 개를 만들었는지를 셈해서 수당을 지급했다는데, 열심히 일한 기술자는 꽤 큰돈을 만졌다고 한다.

한동안 기술자들의 잔시중이나 들고 있던 정윤석을 어느 날 외삼촌이 불러 세운다.

-기왕지사 옹기공장에서 일하기로 했으면, 남들보담 뛰어난 기술자가 돼야 할 것 아녀.

-좋아요, 외삼촌이 뭐이든지 갈쳐만 주면 열심히 배워 보께요.

-자, 그럼 우선 깎기 작업부터 해보자.

외삼촌은 윤석을, 점토가 키 높이로 쌓여 있는 흙더미 쪽으로 데리고 가더니, 습기를 유지하기 위해 덮어두었던 가마니를 걷어냈다.

-잘 봐라. 이 흙데미 속에는 작은 돌멩이도 들어있고, 나뭇가지도 섞여 있고, 유리조각도 들어있단 말이다. 그런 불순물들을 골라내는 작업이 바로 깎기 작업이여. 어떻게 하는지 잘 봐.

30센티 자(尺) 정도 크기의 납작한 쇠붙이를 반원으로 휜 다음, 양쪽 끝에 나무 손잡이를 달아놓은 그 연장의 이름이 ‘깎기’다. 그 깎기를 양손으로 잡고서 점토더미의 표면을 얇게 깎아 내리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그 깎는 작업을 또한 ‘깎기’라고 부른다. 그렇게 점토를 얇게 깎아내는 중에 작은 돌멩이나 나무토막이나 유리조각 등이 깎기에 걸려서 떨어지면 한 쪽으로 골라서 치운다. 이렇게 해서 흙더미 아래 바닥에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점토 부스러기가 쌓인다. 그 흙을 모아서 옹기를 만든다.

-인자 깎어낸 이 흙을 한 데 뭉쳐서 옹기를 맹글면 된다, 이 말씀이지라우?

-이눔아, 옹기 맹그는 것이 그렇게 쉬우면 기술자 아닌 사람이 없게? 깎아낸 흙을 모태서 뭉친 다음에, 쩌어그 있는 나무 뚝메로 한참을 띠디레 패서 다져야 하는 것이여. 그래야 점토 속에 공기가 안 들어가그등. 그런 담에 그 흙을 다시 두 번 깎기질을 해야 하는데….

-아니, 그걸 또 두 번씩이나 깎는다고라우? 아이고….

겨우 재료 준비하는 과정이 이렇듯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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