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시대와 함께 호흡한 학자를 떠나보내며

  • 입력 2022.10.30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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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강선일 기자
강선일 기자

지난 21일, 오랜 투병 끝에 정태인 전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이 별세했다. 지난해 7월 폐암 4기 선고를 받은 이래 그의 쾌유를 많은 이들이 간절히 염원했지만, 끝내 정태인 선생은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살아온 시대는 엄혹한 시대였다. 소위 주류 경제학자들이 시장경제 원리를 금과옥조마냥 떠받들며 ‘경쟁’의 필요성을 부르짖고, 그에 따라 수많은 민중을 희생시키는 자유무역 체제마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대였다. 농민을 희생시키고 국민주권도 망가뜨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소위 ‘전문가’라는 이름표를 단 자들이 앞장선 시대였다.

정태인 선생은 고통받는 시대와 함께, 시민과 함께 호흡한 몇 안 되는 학자였다. 거의 모든 ‘학자’와 ‘전문가’들이 한-미 FTA가 경제에 이득이 될 것이라며 FTA 체결을 촉구하는 대국민 사기극을 벌일 때, 선생은 결사적으로 한-미 FTA를 반대하고 나섰다.

2011년 10월 24일 국회에서 열렸던 한-미 FTA 끝장토론회 당시, 선생은 한-미 FTA 발효 시 FTA의 독소조항인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도(ISD)’ 등이 한국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며, 무엇보다 농업 분야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선생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미국 투기자본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지연해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됐다며 ISD를 활용해 한국 정부에 소송을 걸었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는 론스타에 한국 정부가 3,000억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농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한-미 FTA 발효 전인 2008~2012년 16억1,800만달러였던 평년 농산물 수입액은 지난해 86억9,900만달러로 538% 폭증했다. 무분별한 FTA 체결로 지난 10년간 7,452명의 포도 재배농민이 포도농사를 포기하는 등 국내 농업기반은 무너져가고 있다.

가짜 지식인들이 전문가인 척하며 국민의 미래를 팔아넘기는 시대에, 정태인 선생은 시대와 함께 호흡했고 함께 미래의 대안을 모색했다. 가짜 지식인들이 가혹한 ‘경쟁’만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할 때, 선생은 ‘협동의 경제학(이는 선생의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을 모색했다. 시민 간의 신뢰와 협동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경제, 공공의 이익이 반영되는 공공경제, 그리고 생태적 전환을 위한 생태경제의 실현이 선생의 꿈이었다.

선생은 이 꿈들의 온전한 실현을 보지 못하고 먼저 떠났지만, 이 꿈의 실현 여부는 그의 후학들, 그리고 시민들 모두에게 달렸다. 다행히도 선생에게 ‘협동’의 가치를 배운 수많은 시민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럼에도 선생의 빈자리는 크다. 여전히 온갖 파고가 들이닥치는 이 땅의 민중들은,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학자를 찾기 어려운 이 시대를 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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