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수천억원의 수입쌀 구입비와 가루쌀 개발비, 예산 낭비 아닌가

  • 입력 2022.10.30 18:00
  • 기자명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순이 정책위원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광주전남연합)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폭등하는 생산비, 치솟는 농자재값과는 반대로 폭락하는 쌀값 때문에 농민들은 이대로 농사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이 많다. 그런데 양곡 정책을 둘러싸고 여야가 힘겨루기하는 모양새가 유치원생만도 못하다. 대통령까지 양곡관리법 개정이 농민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며 거부권을 운운하는 등 국회 입법권을 쥐고 흔들면서 고양이 쥐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쌀밥을 주식으로 먹기 시작한 이래로 이렇게 쌀을 천덕꾸러기 취급한 역사가 없다. WTO-FTA 추진으로 농산물 수입개방을 밀어붙일 때도 쌀만은 지켜야 한다는 것엔 여야가 따로 없었다. 쌀은 민족의 근간이며, 주식이기 때문이다. 흉년이 든 2020년엔 쌀 자급률이 90% 이하로 떨어졌고, 과잉이라고 했던 2021년도 쌀 자급률은 92%에 불과했다. 지금의 쌀문제는 양곡관리법을 지키지 않고, 시장격리를 늦추고, 최저가 입찰로 쌀값을 폭락시킨 정부 당국의 잘못에 기인한다. 특히, 작년의 재고는 밥쌀용 쌀의 수입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고한 비상시 비축물량인 공공비축미를 저장하지 않고, 시장에 풀어 누적된 물량이라고 농정당국도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결국 장기적인 양곡관리 대책 없이 물가 때려잡는다고 쌀값만 떨어뜨리려 했던 정부의 잘못으로 쌀 대란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지금 정부는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다. 농작물 중에서 단위 면적당 순소득이 낮은 것이 쌀이다. 300평당 순소득이 50만원 정도다. 이것도 쌀가격이 좋은 시절의 얘기다. 전체 농민의 72%가 3,000평 미만의 경작을 하고 있다. 1년 농사지어봐야 한달에 50만원도 안 남는다. 시장격리 의무화한다고 쌀이 과잉되진 않는다. 농업의 현실을 제대로 전달해야 할 농식품부 장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루쌀 홍보대사가 돼 농정을 망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가루쌀의 재배적응성과 시장성을 검토했는지 농가들 피해가 발생하면 책임질 수 있는지 묻자 조재호 농촌진흥청장도 아직 완벽한 품종이라 생각지 않는다며 품종의 문제점을 시인했다. 그럼에도 올해 당장 39개 시범단지를 조성해 나가겠다고 농식품부는 밀어붙이고 있다. 단지당 3,000만원의 교육 컨설팅비와 5억원 규모의 시설·장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가공업체엔 가루쌀을 이용한 제품 개발에 막대한 돈을 지원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장격리 의무화를 하면 엄청난 예산이 낭비된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가루쌀을 재배하고 싶으면 다른 예산을 세워서 해야 한다. 전략작물 직불제는 본래 농업의 다양한 공익적 활동과 생태다양성을 보장하는 환경농업을 지원해 지속가능한 농업을 유지시키고, 자급률이 떨어지는 작물에 대한 인센티브를 줘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쓰일 돈이다.

한때 당뇨에 좋은 쌀, 가공용 쌀이니 해서 재배했다 판로가 없어 사라진 벼 품종들이 얼마나 많은지 농민들은 경험에서 알고 있다. 우리밀조차 수입쌀과 가격 경쟁력이 안 되고, 품종의 한계로 판로를 찾지 못해 대란이 났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현재는 가루쌀을 공공비축미로 수매한다고 하지만, 가루쌀은 우리밀보다 훨씬 비싸다. 과연 업체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글루텐이 없어 제빵용으로 적합하지 않은 가루쌀을 얼마나 선호할 것인지 아무도 장담 못 한다. 가루쌀의 재고처리 대책은 있는가. 차라리 그런 예산을 우리밀 재배 농가에 지원해 우리밀 재배를 늘리는 것이 백번 낫다.

수입쌀은 저온저장고에 보관하면서, 국내산 쌀은 아직도 일반창고에 보관해 미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미국산 TRQ쌀 고가매입도 논란이다. 수입양곡 매입에 드는 돈은 2019년 3,800억원에서 2023년 5,549억원으로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이런 데 쓰는 돈은 예산 낭비가 아닌가. 국민의힘 의원들은 양곡관리법 반대부터 할 게 아니라, TRQ 수입쌀 재협상부터 요구해 국회의원 월급 주는 게 예산 낭비로 비치지 않게 제 할 일을 똑바로 하길 바란다.

윤석열정부는 내년도 임산부 친환경 꾸러미 지원사업, 농식품바우처 사업 예산을 삭감시켜버렸다. 본 예산에 편성해 쌀소비를 늘리는 방안을 강구하는 게 쌀의 과잉을 해결하는 보다 나은 대책일 것이다. 남도의 벼 수확이 끝나가고 있지만, 예년보다 떨어진 생산량에 농민들의 시름이 더해지고 있다. 벼 출수기에 비가 잦았던 데다, 기온변화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흉작이 들 경우 정부는 어떤 대책이 있는지 묻고 싶다. 도대체 식량자급률을 높일 생각은 있는 건가. 지금의 기후위기, 식량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건가. 92%에 그치는 쌀 자급률을 놓고, 과잉을 논하고 있는 것 자체가 맞는 건가? 밥 한 공기 300원도 안 되는 쌀값이 비싸서,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다른 농사 안 짓고 쌀농사를 지을까 걱정하시는 농식품부 장관 및 국민의힘 의원님, 당신이라면 이 돈 받고 농사짓겠습니까?

밥 한 공기 300원 보장 등 최저가격을 명시한 양곡관리법을 다시 제정하자고 한다면 농민들도 쌍수 들고 환영하겠다. 하지만, 단지 당리당략을 위해 쌀문제를 이용하려 한다면, 농민들은 탄핵으로 맞설 준비가 됐다. 11월 16일 전국농민대회가 탄핵의 들불이 되지 않도록 양곡관리법, 제대로 만들길 정치권에 요구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