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52%? 쳇!

  • 입력 2022.10.30 18: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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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가을 가뭄에 농사일이 일찍 마무리되었습니다. 또 한 번의 가을을 어찌 맞을까 걱정이 앞섰는데, 어찌어찌 가을이 넘어갑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봄가을 농번기가 훨씬 정신이 없었는데, 작년 다르고 올해는 또 다르게 느껴집니다. 어느새 집 앞으로 경운기가 3단 기어를 넣고 전속으로 달리던 풍경이 사라지고, 마을 분들의 나이와 반비례해서 농기계들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당연히 농사일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또 자주 보이던 분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안부를 여쭈면 낙상사고가 일어났다거나 가벼운 시술을 하러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는 합니다. 지난번 추석이 지나고서도 마을에 몇몇 아주머니분이 그런저런 일로 입원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추석 후로 입원날을 잡은 까닭은 몸이 좀 불편하더라도 명절은 쇠고 가겠다는 의지의 반영이겠지요? 두루 가족들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일 테지요. 어쨌건 남의 일이라 그러려니 하며 가을을 보내는데, 뜻밖에 그 집들의 농사에서 표가 많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유달리 농사 때를 잘 맞추고, 농사도 일등으로 잘 짓는 집이라, 손이 비어도 그다지 표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웬걸, 그렇게 일을 잘 하시던 아저씨께서 그전만큼 때맞춰 일을 쳐내지 않으셨습니다. 못한다는 느낌보다 안 한다는 느낌이랄까요? 재미가 없으신가도 싶었습니다. 아니, 아주머니께서 재촉하지 않으셨을까요? 어쨌건 일이 표나게 늦춰지고, 속도감 있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큰일은 남편이 대부분 잘 하는데도 언제나 재촉을 하는 쪽은 이쪽입니다. 우리 집뿐 아니라 다른 집도 그렇다고들 합니다. 게으르지 않음에도 꼭두새벽부터 아침을 먼저 열고, 동기를 부여하는 쪽은 여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젊은 부부 사이에서는 갈등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 야무지고 부지런한 친정아버지께서도 늘 어머니를 앞세워 일했다 하시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요. 다 같은 농사일을 하면서도 누군가가 밥을 차려주면 그때서야 시동을 거는, 조금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삶을 누군들 안 살고 싶겠습니까? 그럼에도 더 많은 마음을 내고, 더 앞선 준비를 해서 일에 틈이 없게끔 하는 일을 여성들이 기꺼이 합니다. 그래야 일이 되기 때문이고, 그래야 안정적인 살림이 된다는 것을 여성들은 애를 낳고 기르면서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겠지요. 그래서 여성이 야물어야 집이 잘 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왔나 봅니다.

농림부에서 공식적인 여성농업인 실태조사를 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도이고,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가 나오기 전인 2002년도에, 민간차원으로 여성농업인센터에서 농업기여도에 대한 조사를 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농업노동의 52%로, 절반을 넘기는 수준이었습니다. 그전부터도 여성농업인들의 농사일 비중이 높다고는 생각했지만, 통계자료를 가지고 보다 객관적으로 말하기 시작한 때가 이때부터입니다. 지금은 더 섬세한 자료가 있어서 구간별 비중이 자료화되어 있습니다. 어쨌건 절반이 넘는 농사를 여성농업인들이 담당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추석 지나고서 마을 분들의 입원과 농업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서, 저 통계는 양적 통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질적인 측면과 같이 살펴보자면 훨씬 많은 기여가 있다는 것이고, 특히 동기부여 측면에서, 또는 돌봄 측면에서는 훨씬 못 미치는 통계자료라는 것입니다. 가족농이 대부분인 우리 농업에서 여성이 기여하는 바가 어디 50% 수준에서 평가받을 수 있겠습니까? 꼭두새벽부터 가족의 몸상태와 입맛과 계절을 고려해서 먹거리를 장만하고, 애썼다, 고생했다, 멋지다 추켜세우며 지지하고, 행여나 근심거리가 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위로하며 모진 세월을 감당해온 것이지요. 아무리 봐도 여성농업인은 참 크고 위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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