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옹기② 옹기 빚는 흙은 어떻게 조달 되었나

  • 입력 2022.10.23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옹기를 만드는 공정에서 가장 우선적이고도 중요한 사항은 당연히 옹기의 재료가 되는, 질 좋은 점토를 확보하는 일이다. 봉황마을이 옹기 굽는 마을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일차적인 배경은, 질 좋은 점토가 주변에서 지천으로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옹기 공장의 주인이 설령 자기 소유의 논이나 밭이라 해도, 그 속에 묻힌 점토를 제 마음대로 파다 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광업권(鑛業權)이라는 말이 나온다. 광업법(鑛業法)에 의하면, 토지의 소유와는 별개로 땅속에 묻힌 광물은 원천적으로 국가에서 관리한다. 철광석이나 석탄이 아니더라도, 옹기 만드는 점토 역시 국가로부터 광업권을 부여받은 업자라야 채취할 수가 있었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이 업자가 봉황리의 어느 집에 나타나서 토지의 주인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영감님, 다른 거이 아니고, 쩌그 재 너머에 있는 영감님 네 논 말입니다이…

-우리 논 안 팔어!

-아, 논을 팔라고 온 거이 아니고, 논배미를 파보니께 그 밑바닥에 점토가 쫙 깔렸드란 말이오. 그 흙이 옹기 맨드는 재료로 그만이랑께라우.

-그랑께, 우리 논바닥 밑에서 옹기 맨드는 흙을 파내겄다 이 말이여 시방?

-넉넉하게 보상을 해드릴 것잉께, 흙을 조깐 파서 씁시다.

당국으로부터 채굴 허가를 받은 업자(광업권 소지자)와 점토가 묻혀 있는 전답의 주인이 만나서 이러저러 주판알도 퉁겨보고 손가락도 꼽아보다가 드디어 흥정이 끝나면, 본격적인 굴토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옹기장이 정윤석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광업권 가진 업자가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서 주로 삽이나 괭이로 땅을 팠는데, 어린 시절에 동무들하고 구경 가서 보면, 어떤 데는 흙구덩이를 어른 키보다 더 깊게 파야 옹기 만드는 점토가 나오지만, 또 어떤 데는 1미터만 파도 질 좋은 흙이 나와요. 물론 파다가 토질이 영 아니다 싶으면 작파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하고…. 그렇게 파낸 흙더미에다 물을 뿌려가면서 삽으로 탁탁 두들겨 패요. 그런 다음에 나무칼로 두부모 도려내듯이 잘라내 가지고….”

땅속에서 파낸 점토를 인부들이 삽으로 잘 다져서는 가로 30, 세로 40여 센티미터의 덩어리로 만든다. 이제는 그냥 흙이 아니라 옹기공장에 재료로 납품할 상품이 만들어진 셈이다.

다음으로는 이렇게 만들어진 점토 덩어리를 옹기공장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그 운반 작업이 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점토를 채취하는 논이나 밭이 옹기공장이 있는 마을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는 탓에, 일차적으로는 우마차가 그 일을 맡는다.

“보통 소달구지 한 대에다 네모지게 잘라놓은 점토 덩어리 일흔 개를 싣거든요. 왜 하필 70개냐 하면, 그 정도 분량이 돼야 1톤이 돼요. 그래야 점토를 채굴한 업자와 옹기공장 주인이 팔고 사고 할 때 톤당 얼마, 이렇게 계산하기도 쉽고 해서….”

비포장 자갈길을 한참 동안 덜컹거리며 굴러가던 소달구지가 드디어 마을 언저리의 길가에 멈춰 선다. 거기서부터 옹기공장까지는 사람들이 직접 이고지고 운반을 해야 하는데, 이때부터는 점토를 구입한 옹기공장 주인이 알아서 날라야 한다. 이웃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 노임은 낫이 줄 것잉께, 우선 흙덩어리들을 내려서 우리 공장으로 운반들 하드라고!

-아짐씨들은 두 덩어리씩만 이고 가고, 지게 지고 온 남정네들은 조깐 낫이 지고 가랑께. 야, 야, 아그들아, 느그들도 한 덩어리씩 보듬고 우리 공장으로 올라가자.

남자들은 지게로 져 나르고, 여자들은 머리에 이고 운반한다. 아이들도 흙덩이를 하나씩 안고서 낑낑거리며 한 몫을 한다. 물론 옹기공장 주인으로부터 일정한 노임을 받고 일을 돕는 것이다. ‘봉황리 주민 모두가 옹기 만드는 일에 종사하였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