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경축순환농업을 위한 변명

  • 입력 2022.10.23 18:00
  • 기자명 최덕천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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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천 상지대 교수
최덕천 상지대 교수

 

이 글의 제목으로 ‘경축순환 유기농업’이라는 용어를 달았다가 그냥 경축순환농업으로 바꾼 것부터 변명을 해야 하겠다. 지난 4,000년 동안 우리나라 농업은 농가에서 가축 몇 마리 키우며 다양한 작물을 복합 생산하던 소위 경축순환농업체제였다. 그러던 것이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경종농업과 축산농업은 마치 부부가 별거를 하듯 격리되고 말았다. 이러한 현상은 정부의 농정당국에서부터 농민단체, 심지어는 농심에서조차도 견고한 칸막이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유기농산물 인증농가는 2만4,000여농가인데 비해 유기축산물 인증농가는 124농가에 불과하다. 유기축산물 출하량은 전체 축산물의 1% 정도여서 시장형성도 안 되고 있다. 유기 돼지는 1농가, 유기 육계 역시 3농가밖에 없다. 그중 경축순환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유기 농가는 23농가에 불과하다. 이 농가들은 강한 신념과 자부심으로 유기축산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원가의 60% 전후 비중을 차지하는 사료비와 인건비 상승 때문에 파산위기에 처해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망하다.

「탄소중립기본법」이 지난 3월 25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이 그 배경이다. 2012년「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후 ‘저탄소’ 농업이 등장하고, 이어 저탄소농산물 인증이 시작됐다. 친환경농산물과 GAP 인증 농산물이 대상인데, 대상 농가 중 3.5%만이 인증을 받고 있다. 다행히 내년에는 저탄소축산물인증제가 시행된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행 법제상 친환경축산은 유기축산밖에 없다. 무항생제축산물이나 동물복지축산물 생산은 ‘친환경’ 측면에서만 보면 일반축산물과 다른 점이 별로 없다. 저탄소축산물 인증 규정은 아직 정확하지 않지만, 저탄소농산물 인증 시 제안된 19가지 저탄소농업기술이 비슷하게 응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때, 저탄소축산기술의 기본 원칙이 중요하다. 관행축산 사육두수를 유지하면서 대규모 공장에서 축분뇨를 사후 처리하는 방식보다는 사육두수 감축을 전제로 소규모 경축순환형 농업을 확산하며 사전 저탄소기술 적용을 우선 요건으로 하면 좋겠다. 비용-편익분석과 공익적 가치평가에서도 이것이 우월한 효과를 보일 것이다.

이제 환경친화형 축산 육성을 기반으로 하는 소규모 경축순환농업 육성정책이 필요한 때다. 농민들도 경축순환형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 싶고 유기축산도 하고 싶어한다. 환경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ha 미만의 대다수 소농이나 소규모 축산 농가는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다음과 같은 요건들을 생각해 봐야 한다. 첫째, 초지축산이 존재하고 유휴·여유농지 확보가 필요하다. 가족농 단위 경영역량도 고령화로 인해 취약하다. 둘째, 원칙과 신념을 가진 혁신가 농민의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 의식도 중요하다. 셋째, 순환농업기술을 적용할 소규모의 영농모델과 매뉴얼이 필요하다. 농업 현장에서 경종농가는 공장형 유기퇴비 구입이 편하고, 축산농가는 경종부문에서 나오는 소득이 크지 않아 무관심하다. 경종농가가 유기축분을 퇴비화해서 사용할 유인이 약하고, 축산농가도 유기축분 퇴비사를 만들 농지가 부족하며, 제조비 지원도 거의 없다. 유기농축산 부산물 순환에서 농가 간 동상이몽, 미스 매칭(mismatching)이 많다. 넷째, 법제적 측면에서는 친환경인증제도가 경축순환 촉진에 중요하다. 유기축산을 하려면「축산법」을 따라야 하고 축산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 유기농축산물의 인증 규정에서는 경축순환 유기농업이 원칙이다. 하지만 비유기축산 축분퇴비(무항생제, 동물복지)도 허용하고 있다. 다섯째, 유기축산물 또는 경축순환형 유기농축산물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 농가도 경영체다. 생산과정에서 ‘저비용-고신뢰-고가치-고책임소비’의 논거도 함께 생산해야 한다. 즉, 그러려면 농가는 탄소중립 기여 등 ‘가치’를 제대로 창출해야 한다. 그래서 소규모 경축순환 친환경축산물에 대해 ‘관계소비’를 확산하기 위해 참여인증제(PGS)를 도입하는 것도 긴요하다.

안 해본 사람들은 근사해 보이니 관심을 갖지만 해본 사람은 안 하려고 하는 것이 경축순환 친환경농업의 현주소다. 대부분의 가축사료, 특히 일반사료보다 두 배쯤 비싼 유기사료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외국에서 수입해 쓰고, 값도 싸다. 그 덕분에 곡물자급률도 19.7%로 주저앉아 있다. 감염병 팬데믹, 구제역 사태 등으로 곡물과 사료 등의 지역·국경 간 이동이 제한되는 사태가 또 오면 어찌할까? 우리나라 인증기관이 해외에서 인증한 유기농축산물이 시판되고 있다. 풀 먹고 자란 수입 유기농 소고기가 한우보다 싸다면, 언제까지 신토불이로 소비자들의 애국심에 호소할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경축순환농업의 저탄소효과를 근거로 한 선택형 직불프로그램, 지역 특화 푸드플랜형 소규모 경축순환농업 지원이 필요하다. 청년농과 귀농·귀촌자의 후계농 육성·정착정책에 스마트농업과 함께 소규모 경축순환형 친환경농업도 포함해 진행해 주기를 바란다. ‘저탄소·경축순환·친환경농업’은 대통령 농정공약 사항이다. 정부는 농업의 원형을 되살릴 수 있는 탄소중립 시대의 대안영농이 정착되도록 비전을 제시하고, 그 기반인 환경친화형 축산 육성정책을 잘 이행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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