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⑲] 소풍 가기 좋은 10월의 어느 날엔, 무안장

  • 입력 2022.10.23 18:00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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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10월은 어느 하루 아깝지 않은 날이 없다. 하늘은 높은데 구름이 아름답기 그지없고, 산은 푸른 가운데 붉은 기운들이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물 흐르듯 내려온다. 사방이 다 아름다움투성이라 어디로 고개를 돌려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소중하여 시간을 붙잡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날에 무안엘 갔었다. 아직은 전어의 철이기도 하고 이제 막 낙지와 꽃게도 살이 올라 입맛을 돌게 할 때여서 더 가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눈호강은 지리산에서 하고 있으니 입호강을 하고 싶어서 갔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바다를 면하고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바다엔 가지 못했고 대신 오일장터에서 바다를 만났다. 낙지로 소문난 고장인 만큼 낙지가 흔하기는 하지만 지갑을 열기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기름이 오른 뱃살 때문인지 새벽 조업에서 붙잡혀 이곳까지 왔을 놈들인데 점심때가 되어도 팔딱거리는 전어의 가격도 만만치는 않았다. 해산물을 파는 식당에서 서비스로 주던 전어는 이미 옛말이 되었다. 산란기 3개월의 금어기간을 지나고 나온 참조기도 뱃살이 노랗다. 많은 분들이 조기는 봄이 제철이라고 말들 하지만 사실은 이 가을에 냉동하지 않은 생조기가 가장 맛있을 때라고 엄청 권하신다.

몸통은 검은색인데 다리만 주홍색인 대하가 팔딱거린다. 사실 이 모습을 처음 보면 마치 지네 같은 느낌이 들어 외면하고 싶어진다. 이상하게 죽은 새우에서는 산 새우의 그런 검은색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산 새우와 죽은 새우가 같이 있는 곳에서 보니 그 차이가 극명하게 달리 보인다. 뭔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배우니, 장터에서는 그러므로 교육비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앞으로 며칠간은 허리 졸라매야 하지만 오늘만큼은 좀 과하게 장을 본다.

해산물에 이어 알타리도 세 단 사고 친구에게 보낼 김치를 담기 위해 쪽파도 두 단 샀다. 이제 막 수확한 생강도 좀 샀다. 잎과 줄기가 그대로 붙은 햇생강은 편강을 만들기 좋으니 꼭 이맘때 조금 사야 한다. 햇고구마, 햇야콘, 그리고 박속낙지탕을 끓이기 위해 박도 한 덩이 샀다.

10월의 무안장은 낙지, 전어, 참조기 등의 해산물로 가득하다.
10월의 무안장은 낙지, 전어, 참조기 등의 해산물로 가득하다.

 

장 본 것을 차에 가져다 두고 점심을 먹고 돌아가기로 한다. 어디로 가서 먹어야 할지 알 수 없어 오일장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만 무안만의 맛있는 음식을 팔 것 같은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오일장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야 낙지거리도 있고 하니 그곳으로 가고 싶기도 하지만 돌아가서 장 본 것들을 풀어 저녁을 먹고 싶기 때문에 시장에서 점심을 먹어야 시간이 절약된다. 조기를 팔던 상인이 알려준 식당으로 갔다. 가보니 손위 자매가 하는 식당이었다. 대구머리를 이용한 맑은탕을 파는 집인데 국물이 시원하니 좋았다. 간밤에 술이라도 먹었다면 해장이 된다며 좋아했을 것 같다. 친절하기도 하고 하여 다음에 최소한 한 번은 더 가보고 싶은 식당이었다.

소풍으로 다녀온 무안오일장 덕에 오랜만에 불을 피워 숯불을 만든다. 전어도 구워보고 참조기도 구워본다. 당연히 이웃 친구들도 불러온다. 평소엔 프라이팬에서 굽던 생선들이 숯불에서 구워지니 불향이 입혀져 또 다른 맛이 난다. 술을 한 잔 앞에 놓고 살아가는 얘기들도 같이 상에 올려놓으니 구색이 맞는다. 이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조차 맛있기만 하다. 마지막은 박을 켜서 껍질을 벗긴 후 삐져 넣어 낙지탕을 끓여 해장국처럼 한 그릇씩 나눠 먹고 자리를 마무리한다.

나와 무안과의 첫 만남은 연꽃이었지만, 해를 더해가면서 이런저런 먹거리들과 만나는 시간이 늘다보니 무안이 점점 더 좋아지기만 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친절한 사람들이 공존해 살아가는 곳, 그곳 무안이 참으로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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