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옹기① 강진군 칠량면에 ‘옹기마을’이 있었다

  • 입력 2022.10.16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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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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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서는 두어 통, 박이 익어간다. 닭들은 모이를 찾아 마당을 종종거리고, 토방마루 한 쪽 절구통 옆에서 강아지가 졸고 있다. 초가집 기둥과 마당가의 감나무 가지를 연결한 나일론 줄에 빨래가 널려 있다면야 좋겠지만, 이미 걷어낸 뒤라면, 대신 참새 몇 마리가 조르라니 앉아서 재잘거린다 해도 어색할 것은 없다. 초가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 변소가 있고, 변소와 나란하게 붙어 있는 외양간에서는 누렁소가 마당 쪽으로 머리를 내밀고서 게으른 입놀림으로 되새김질을 한다. 아, 싸리 울타리에 드문드문 나팔꽃이 피어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자, 이쯤 화폭에 담았으면, 옛 시절의 한가로운 시골집 정취를 그린 풍경화로 모자람이 없을 듯한데…. 하지만 아니다. 장독대가 빠진 시골집의 풍경이라니, 턱도 없다!

마당 한 쪽의 장독대에 장항아리가 가지런히 갖춰져서 하루도 거름 없이 건강하게 제 구실을 해야 모름지기 사람 사는 집이었다. 초가삼간 뿐 아니라 고을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부자들의 고대광실이라 해도(아니 그럴수록 더욱), 장독대는 빠져서는 안 될 필수 세간이었다.

장독대란 장독들을 구색 맞춰 올려놓기 위해서 마당 한쪽에 낮게 쌓은 대(臺)를 이름이고, 장독은 갖가지 장(醬)을 담는 항아리다. 항아리는 흙으로 빚은 그릇, 즉 옹기(甕器)의 일종인데 옹기를 세분하면 독‧항아리‧뚝배기‧동이‧자배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 생활 속에서 흙을 빚어 만든 옹기가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 요인으로, 편의성 측면에서 옹기보다 월등한 유리‧플라스틱‧스테인리스 등으로 만든 용기들의 보급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970년대 이후 플라스틱으로 거의 모든 용기들을 만들어 보급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항아리를 비롯한 옹기들이 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더구나 아파트가 새로운 주거형태로 등장하고, 냉장고 보급이 일반화하면서, 도회지에서는 항아리가 제 놓일 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을 보관하는 장독들을 비롯하여, 집집마다 곡식이며 술이며 거의 모든 먹을거리들을 보관했던 그 많은 옹기들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서 어떻게 팔고사고 했을까?

2001년 봄,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의 바닷가에 위치한 봉황마을을 찾아 떠났다. 그 마을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주민 전체가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잇던 모름지기 ‘옹기마을’이었다. 그러나 내가 찾아갔을 때에는 주민 대부분이 옹기생산을 작파한지가 까마득히 오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흙을 파서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굽고 있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다. 남해안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을 아직도 ‘옹기마을’이라 일컫도록 명맥을 이어온 그 사람은, 열여섯 살 때 그 마을에서 옹기 빚는 기술을 익힌 이래, 입때껏 점토를 파고 깎고 이겨서 옹기 굽는 일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는, 자칭 옹기장이 정윤석 씨(1941년생)다.

“그 때 우리 봉황리에 90여 가호쯤 살았는데, 마을 사람들 모두가 옹기 만드는 일에 종사했어요. 그 말은 90가호가 집집마다 모두 옹기를 직접 생산해서 팔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옹기공장을 갖춘 집은 스물다섯 집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각 공장에 나가서 이러저런 일들을 했지요. 이 외떨어진 어촌마을이 왜 옹기마을로 각광을 받았냐 하면요, 우선 마을의 여기저기에서 질 좋은 점토가 풍부하게 난다는 점을 들 수 있지요. 논이든 밭이든 일단 팠다 하면 항아리 빚기에 맞춤한 점토가 좍 깔려 있었으니까요. 또 하나는 여기가 바닷가잖아요. 옹기를 만들기만 하면 뭘 해요. 내다 팔아야지요.”

차량을 구비할 엄두를 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당시엔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서, 옹기를 육상으로 내다 파는 것은 여러모로 불리했다. 다행히 봉황리는 어촌 마을이어서, 공장에서 만든 옹기를 항구도시나 남해안의 도서지방으로 보급하기에는 알맞은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 물론 풍선(돛단배)을 이용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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