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우리들의 또 다른 모습

  • 입력 2022.10.16 18:00
  • 기자명 정성숙(전남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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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숙(전남 진도)
정성숙(전남 진도)

태풍 힌남노를 맞고 드러누웠던 대파가 아직도 일어나는 중이다. 파밤나방 벌레와 굴파리가 대파 잎을 극성스럽게 뜯어먹고 있어서 너덜너덜했다. 농약을 하는 김에 배추밭까지 하려고 일꾼 한 명을 불렀다. 인력소개소에서 김혁씨가 왔다. 남편은 앞에서 농약을 뿌리고 김혁씨와 나는 농약줄을 잡아당겼다. 농약줄을 끌어주는 김혁씨가 바쁘게 뛰어다녔다. 밭가에서 농약줄을 끌어당기는 내가 힘을 덜 쓸 수 있도록 김혁씨는 최대한 멀리까지 끌고 갔다가 내 가까이 와서 끌어당겼다.

“오빠! 그렇게 뛰어다니지 않아도 돼요.”

남편과 둘이 하던 일을 셋이 하니 수월해서 혼자 애쓸 필요가 없다고 김혁씨한테 내가 여러 차례 당부를 했다.

“글쎄 일 없대두.”

김혁씨는 내 당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써야 할 힘까지 덤으로 썼다.

“일주일 동안 집에서 놀았시오.”

식당에서 가져온 점심을 같이 먹던 김혁씨가 말문을 열었다.

“왜요?”

서너 달 전에는 김혁씨가 내게 은근히 자랑을 했었다. 지난달에는 26일 동안 일을 해서 인력소개소에 나오는 50여 명의 일꾼 중에 가장 많은 벌이였다고.

“누구네(내가 간접적으로 아는 사람) 집에 일하러 갔댔는데 비료 70포를 혼자 뿌렸단 말입니다. 트럭에 오르락내리락 하믄서 비료살포기에 비료 한 포 반을 담아 뿌리는데 허리가 아파서 죽갔드란 말입니다. 어깨 살가죽도 뭉개지고. 무엇보다 기분이 상하더란 말입니다. 억만금을 준대도 인제 그집 일은 아니 하지요.”

작물이 들어가기 전의 맨 밭에 비료 70포를 뿌리려면 보통은 트랙터에 부착하는 비료살포기로 뿌리는데 기계에 문제가 있었을까? 게다가 일꾼이 트럭에 올라가서 비료살포기에 비료를 담은 후에 다시 내려와 비료를 뿌리는 동안 주인은 차 안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 또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도 일꾼보다 젊고 건장한 사람이.

“누구네(순하고 착하다는 주위의 평판을 듣고 나도 잘 아는 사람) 집에 일을 갔을 때는, 소처럼 수레 같은 걸 끌고 댕김서 비닐을 씌웠는데 갈증이 심하게 나더란 말입니다. 그래 물 좀 달랬더니 햇빛에 뜨뜻하게 데워진 물을 주고 그늘에 앉아 있던 본인은 얼음물을 마시더란 말입니다.”

“누구네(우리 내외와 비교적 가깝게 지내는 사람) 집에 일을 갔을 때는 하루 종일 이 새끼 저 새끼 소리를 들었지 뭡니까. 비닐을 씌우면서 마무리를 해놓고 트랙터가 되돌아오기 전에 담배 한 대 피고 있다가 농땡이 부린다고 욕을 얼마나 먹었는지 말도 마시라요.”

김혁씨는 심기 사나웠던 사례들을 한참동안 얘기했다.

김혁씨는 중국 연길 출신의 조선족인데 65세이다. 7년 동안 한국에서 일하면서도 당비(중국공산당)를 거르지 않고 내는, 중국에 대한 자부심이 큰 사람이다.

우리 전답에서만 일을 하느라 주변 근황을 모를 거라며 김혁씨는 여러 곳으로 일하러 다니면서 본 농사 작황이나 사건을 알려줬다. 어느 동네 대파는 성글고 또 어느 동네 배추는 늦되고 있다는 소식까지. 김혁씨를 통해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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