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55] 어느 농민 지도자의 슬픔

  • 입력 2022.10.16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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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평생 생명 곳간을 지키며, 지속 가능한 농업을 통해 자연과 환경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고, 농촌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농부들을 이 땅의 진정한 애국자라고 늘 생각해 왔다. 이들 때문에 그나마 우리의 농업과 농촌이 이 정도라도 유지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 전체로 이 어려운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농사지으시는 분들이다. 그래서 난 그들을 늘 마음속으로 지지하고 진정으로 존경한다. 그런 농부들이 우리의 농촌 곳곳에 계시지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분 중 한 분이 바로 충남 홍성에서 쌀농사를 지으며 활동하시는 주형로 농부라고 늘 생각했다. 오리농법, 우렁이농법, 메기농법 등 다양한 형태의 친환경 쌀농사를 이 땅에 도입해 실천했고, 농촌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지역 지도자로서 늘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분이다.

그런 주 회장이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시를 읽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누가 뭐라 하든 올곧게 농촌을 지키며 늘 희망을 얘기하던 그이기에 더욱 가슴 아팠다. 그의 시 ‘논’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추수 앞둔 논을 보니/ 괜히 슬퍼져요/ 이러려고 농촌 운동했나/ 선배님들 죄송해요/ 가두가두 끝이 없는 나라/ 다수확 농업으로/ 질, 지력, 환경 버려 놓고/ 많이 생산하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생각하는 농민 저버리고/ 기업농만 살리려나/ 5년 연속 전염병에도/ 정신 못차리는 과학자들/ 씨없는 포도 수박/ 대를 못 잇는 종자들/ 땅이 필요없는 수경재배 첨단농업/ 일할 것은 많으나/ 일할 일꾼이 없는 농촌/ 추수 앞두고 비가오니/ 괜히 더 슬퍼진다

우리의 정책이, 우리의 학계가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농민 지도자를 슬프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무엇이 그를 그토록 슬프게 했을까.

우리의 주식이요 우리 농업·농촌의 근간일 수밖에 없는 쌀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권, 격려는커녕 가슴에 대못을 박는 관변 학자들, 전혀 이해를 못 하는 대부분의 언론 앞에 농민 지도자들이 차례로 무너지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자긍심을 심어줘 진정 이 땅의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살리는 역할에 전념토록 해도 모자랄 판에 이들을 슬프게 해서는 안 된다.

주 회장의 탄식은 농민들 대부분의 탄식임이 틀림없다. 위정자들과 관변 연구기관들이 알량한 경제 논리를 내세우며 그들만을 위한 연구, 경쟁력 지상주의에 함몰된 매몰찬 농정, 농민 빠진 농정 등을 추진해선 안 된다.

농민 지도자들이 자긍심을 갖게 하고 신나게 해야 한다. 농민 지도자가 무너지면 우리의 농업·농촌·농민이 더 빠른 속도로 무너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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