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시집살이⑧ 시동생을 젖 먹여 길렀다

  • 입력 2022.10.09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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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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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의 할머니들에게서 시집살이 얘기를 듣는 동안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의문점은 당연히 ‘시어머니는 왜?’였다. 시어머니는 그 자신이 모진 시집살이를 겪었고, 자신의 딸들이 또한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어서 같은 처지에 놓일 터인데…그런데 대체 무엇 때문에 아들의 배우자에게, 요즘으로 치면 가히 ‘범죄적 수준’이라 할 그런 가해를 자행했던 것일까?

할머니들은 당신들이 부당하게 당하고 겪었던 시집살이의 억울함과 설움을 절절히 토로하면서도,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몰라. 그땐 시어머니들이 그냥, 다들 그랬어”라고 얼버무렸다.

또 한 가지의 의문은 남편의 구실이다. 아내에 대한 어머니의 학대가 인륜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남편은 왜 적극적으로 아내편이 돼주지 못 하고 방관자의 자리에서 얼쩡대고만 있었을까?

경로당의 ‘할아버지 방’으로 갔는데 달랑 두 명의 할아버지가 막 장기판을 접고 있었다.

“할 말이 없지 뭐. 아무리 마누라가 심하게 당하고 있어도…아내 편을 들어서 부모를 탓하거나 항의를 하는 것은 팔불출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들을 했으니까. 다들 죄인이지.”

한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고는 방을 나갔다. 남은 할아버지가 주저주저하더니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1959년에 결혼을 했어. 조부모님도 살아계시고 동생들이 다섯이나 됐어요.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삼시세끼 밥하고 그 많은 빨래 다 하고…고생 많이 했지. 내가 스물한 살 나던 해 1월에 딸을 낳았는데, 이듬해 2월에 어머니가 내 남동생을 낳았어요. 그러니 내 딸보다 내 막내 동생이 한 살이 적은 거야. 그런데 어머니는 노산으로 젖이 잘 안 나와요. 할 수 있나, 집사람이 시동생한테도 젖꼭지를 물리는 수밖에.”

그 집의 아침풍경은 이러했다. 두 아이가 젖을 달라고 보채며 운다. 며느리는 시동생에게 먼저 젖을 물린다. 시동생이 울음을 그친 대신 딸아이의 울음소리는 더 커진다. 한참 뒤,

-자, 이제 조카도 젖을 먹어야 하니까 우리 시동생 애기 씨는 여기 누워서 놀아야지요.

시동생을 떼어 눕히고는, 딸아이에 젖을 물린다. 그러자 시동생이 울음을 터트린다. 며느리가 딸아이에게 막 젖을 물리고 있을 즈음, 거칠게 문이 열리고 시어머니가 들이닥친다.

-내 아들은 바닥에 팽개쳐두고, 네 새끼라고 기집애한테만 젖을 물리면서 끼고 도는 것이여!

-어머님 그게 아니라 막내도련님 금방 젖 떼놓고….

-아들도 못 낳은 주제에 남의 귀한 아들을 일부러 천대를 하다니!

그러한 상황은 도처에 비일비재했다. 만연한 조혼(早婚) 풍조에다, 산아제한이니 가족계획이니 하는 말은 생겨나기도 전이었으니, 며느리가 애를 낳은 뒤에 시어머니가 출산하는 경우가 흔했고, 별 수 없이 며느리는 시동생에게 젖을 물려야 했다. 더구나 이 남자의 경우, 자신의 아내는 첫 ‘딸’을 낳았고, 어머니는 막내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구박이 유난스러웠다고 고백한다. 그럴 때 잠자리에서라도 아내의 손을 붙잡고 따뜻한 위로의 말이라도 한 마디 해주었느냐는 질문에 그러기는커녕, 아내가 시부모로부터 구박을 당할 때, 자신도 부모편이 되어서 거들었었다고 고백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했다고….

다시 할머니들 방으로 돌아왔는데, 그 사이 화제가 바뀌어서 며느리들의 흉허물이 넘쳐났다. “어떤 할멈은 여름이라 찬물 좀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두어 번 열었다 닫았는데 며느리가 무섭게 쏘아붙이더래요. 전기세 한 푼 보태주지도 못 할 거면서 냉장고 문은 왜 그렇게 뻔질나게 여닫느냐고…. 그래서 서럽다고 눈물을 다 흘리더라니까.”

듣고 있던 다른 할머니가 나직나직 노래를 흥얼거린다.

“귀먹어서 3년이요 눈 어두워 3년이요 / 말 못해서 3년이요 석삼년을 살고 나니 / 배꽃 같던 요 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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