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2022년 가을 풍경

  • 입력 2022.10.09 18:00
  • 기자명 최요왕(경기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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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왕(경기 양평)
최요왕(경기 양평)

1. 
강 건너 동네 형에게 채소박스를 얻으러 갔다. 봄에 동네 초상집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던 양반이다.

“야 요왕아. 너 올해 농사가 어땠냐?”

“아~ 형. 말도 마요. 작년 대비 반타작 밖에 안돼요. 양파가 정확하게 작년 반타작이고 멜론도 그렇고….”

“양파는 왜?”

“봄에 가물었잖아요. 그 전에 작년 가을에 덥고 비가 많이 와서 양파모종 농사부터 반타작이었지 뭐. 오이도 맨날 비가 오니까 일조가 나빠서 영 시원찮고…. 남은 게 가을 무농산데 어찌 될지 모르겠어요. 형은 어때요?”

“야야 말도 마라. 내 농사 수십년 동안 쌈모듬 끊겨본 적이 없는데 올여름에 처음으로 보름간 공급을 못했다. 모종값만 천만원 들었다니까.”

“심어놓으면 맨날 죽어버리니까 그런거죠?”

“그렇지. 겨울에 번 돈 이번 여름에 다 까먹었어.”

“일손은? 원래 있던 그 외국인은 가버렸다면서요? 그 사람 꽤 오래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하고 애엄마가 포장해주고 있다니까. 외국인은 이제 부부를 고용해야 된다는데 내가 한 사람만 쓰면 되지 두 사람을 쓰면 남는 게 있니? 코로나 때문에 인건비도 많이 올라서 돈 많이 주는 데 있다면 바로 가버려. 이제 외국인은 못 쓰게 돼버렸다.”

“하이고. 어머니가 연세가 얼만데 그 일을 하셔요. 형수도 직장 다니면서 형 일까지 도와주면서 어떻게 버틴대?”

“아~ 모르겠다.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한탄으로 버무려진 수다로 서로를 위로하다가 돌아왔다.


2. 
급식 출하회 형님들이 점심을 쏜다 해서 만났다. 양파·감자 수매할 때 출하회 총무일 보느라 고생 많았다고 밥 한끼 사준다 했는데 내가 바쁘다 보니 이제사 만난 거다.

“형님은 요새 뭐 하셔요? 제가 워낙 바빠서 들러 보지도 못했네요.”

“나야 뭐 맨날 오이 따느라 바쁘지. 엊그저께 서둘러서 벼베기는 했고.”

“○○형님이 베 주셨을 거 아녜요? 그 형님 몸이 아파서 어떻게 해줬대요?”

“아 그러니까 아들이 주말 와서 베잖아. 그래서 시간이 안되니 자기네 것만 해도 바쁘지. 나는 그래도 옆집이라고 베 준거야. 아들 왔을 때 서둘러서 베 달라고 한 거지.”

“△△양반네도 기계가 있잖아요.”

“그 집은 자기집 것만 베고 딴집 건 안해줘요. 쌀값이 떨어져서 남의 것 베 줘도 돈이 안 남는다잖아.”

“아~ 그러고 보니 아랫동네 □□형님도 벼베줄 때 일꾼은 안 쓰고 형수님하고 한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일꾼 일당 줘버리면 남는 게 없다면서요?”

“그래도 지금은 톤백으로 하니까 되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콤바인 자루로 받았잖아. 그런 기계로 했으면 그게 되겠어?”

“진짜 벼농사는 인제 기계가 다 하네요. 약도 드론으로 치고.”

“시방 동네 사정이 그래.”

“누구 돈 됐다는 사람들 소문은 없어요? 배가 아파도 농사꾼 돈 벌었다는 소문 좀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허탈하게 껄껄거리며 점심을 얻어먹었다.


3. 
지역에 있는 유통사업체 사무실에 커피 얻어먹으러 들렀다.

“본부장님 올해 힘들지?”

“아이고 말도 마세요, 형님. 미치겠어요.”

“물건이 없어서지?”

“이런 해는 처음이에요. 사무실 올라오시면서 작업장 여사님들 몇 명 안되는 거 보셨죠? 작업할 물량이 없어서 수시로 쉬게 해요. 그냥 몇 명만 출근 시키든가.”

“올해 파가 그렇게 없다며? 우리 영농조합도 파가 끊긴 지 한참 됐어.”

“그러니까 파라는 게 한여름에 좀 힘들다가 이제 한참 나와야 되잖아요? 전국을 뒤져도 물량 확보가 제대로 안 돼요. 애써 구해봤자 품위도 엉망이고. 또 열무·얼갈이는 어떻고요.”

“에휴~ 그래. 근데 올해는 그렇다 치고 내년 전망을 좀 해봐야 될 거 아녀?”

“하~ 그게 전망이 안 돼요. 예측을 할 수가 없다니까요. 올해보다 나빠질 거라는 정도죠 뭐.”

“그래도 어떻게 해봐야지.”

농사꾼이 유통을 다독거려주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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