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시집살이⑦ 며느리밥풀꽃

  • 입력 2022.10.02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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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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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곱다. 우리 집 마당가에도 해마다 여름이면 이 꽃이 핀다. 길쭉한 통 모양으로 늘어진 이 붉은 꽃은 끝부분이 위아래로 벌어졌는데, 얼핏 보면 입술연지를 바른 여인이 입을 벌리고 화사하게 웃는 모양이다. 더구나 아랫입술에 해당하는 곳에 두 개의 하얀 이(치아)도 나 있어서 요염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꽃의 이름을 알고 나면 ‘화사’니 ‘요염’이니 하는 상상은 턱없는 사치임을 깨닫는다. ‘며느리밥풀꽃’이다. 그렇게 보면 아랫입술 위에 난 두 개의 하얀 그것은 이가 아니라 밥풀이 된다. 그 꽃에 얽힌 전설이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한다.

「한국민속문학사전」에 실린 이 꽃의 전설은 이러하다.

옛날에 마음씨 곱고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와 성질이 못된 시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늘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시어머니는 호시탐탐 내쫓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밥이 잘 되었는지 보려고 밥알을 입에 넣자, 시어머니는 이를 핑계 삼아 어른보다 먼저 밥을 먹었다며 며느리를 때려죽인다. 이후 며느리의 무덤가에 붉은 입술에 밥풀 두 알을 입에 문 듯한 모양의 꽃이 피어나는데, 사람들이 이 꽃을 보며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함경도에서 피란 나와 강원도 홍천의 산골마을로 시집갔던 엄금희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보면, 곱기만 한 그 꽃에 왜 그런 전설이 서렸는지 그 배경을 가늠할 만하다. 엄금희 할머니가 겪은 얘기가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그 이웃집에 시집왔던 다른 새댁의 얘기다.

시골 집 마당가에서 갓 시집온 며느리가 밥을 짓는다. 오늘은 사람을 얻어서 들일을 하는 날이라, 모처럼 가마솥 밥을 짓는 것이다. 한참 만에 시어머니가 마당으로 나온다,

-얘야, 점심 때 다 됐는데, 밥은 다 했느냐?

-예 어머니. 뜸도 다 들여놨는데…가마솥 밥은 처음이라 잘 됐는지 모르겠어요.

-어디 뚜껑을 한 번 열어보자. 으음, 잘 됐구나. 거기 양푼 갖고 오너라.

젊은 시어머니가 그 밥을 양푼에다 퍼 담는다. 누룽지도 눋지 않고 밥이 잘 되었기 때문에, 주걱으로 바닥까지 박박 긁어 퍼 담고 나자 빈 솥만 깨끗하게 남았다. 이것저것 반찬을 챙긴 시어머니가 양푼을 이고 일어선다.

-나, 뒷밭에 점심 갖다 주고 올 테니까, 빈둥거리지 말고 우물에 가서 물 좀 길어오너라.

여기까지는 별로 이상해보이지 않은 시골집 풍경이다. 더구나 며느리로서는 처음 해본 가마솥 밥을 성공적으로 잘 지었으니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허기에 지친 이 며느리가 빈 가마솥 바닥을 들여다보면서 울고 있다면…사정이 달라진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먹을 밥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가져가버린 것이다. 시어머니 몰래 밥을 지어 먹자고 해도 곳간 열쇠까지 가져가 버렸으니 그저 굶고 있을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장화홍련전」에나 나올 법한, 그런 심술을 부렸던 시어머니들이, 실제로 도처에 있었다. 엄금희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보자.

“곳간 열쇠를 시어머니가 딱 쥐고 있으니까, 그것이 참 무서운 권력이란 말이오. 끼니때마다 바가지에다 쌀을 떠다 주면서 요놈 갖고 밥해라, 그러는 거야. 밥 지어서 식구들 밥그릇에 다 담고 나면 며느리 밥은 없는 거요. 별 수 있나요? 나중에 시어른들이 남긴 밥이나 먹어야지. 나 같은 함경도 새댁은 성질이 불같아서 그런 것 못 참지. 그런데 그 시어머니가 작년까지 우리 경로당에 나왔어요. 지금은 수족을 못 쓰니까 집에 들앉아 있지만. 이젠 며느리한테 꼼짝도 못 한다니까요, 하하하. 한 번은 며느리가 따져 물었대요. 그 때 왜 그렇게 나를 사람 취급도 안 하고 못 살게 괴롭혔느냐고….”

그랬더니, 그 시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얼버무리더란다.

“글쎄다.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나도 잘 모르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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