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54] 농사일기 써 보시지요

  • 입력 2022.10.02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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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청천벽력같은 심 국장의 소천 소식에 순간 잘못 온 문자 아닌가 했다가, 심 국장 본인이라는 소식을 확인하고는 ‘심 국장이 왜? 심 국장이 내 장례식에 와야지, 이건 아니지, 아직 너무 젊은데’라는 생각이 먼저 머리를 스쳤다.

다음 날 서울대병원으로 문상을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문상밖에 없다는 현실이 너무나 슬펐다. 환하게 웃는 영정사진이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최근 들어 내 지인들의 소천 소식을 가끔 접하지만 이렇게 가슴 에이도록 아프진 않았다.

어느덧 나도 칠순이 돼서인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종이 한 장처럼 가볍게 느껴질 때가 많다. 언젠가는 모두에게 다가올 죽음이라는 것이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우주적 질서일 뿐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나 심 국장은 아직 너무 젊고 할 일도 많지 않은가.

심 국장과의 인연은 내가 현직에 있을 때부터 시작해 은퇴 후에도 이어졌다. 한국농정신문에 기고도 하고, 칼럼도 쓰고, 가끔 사설도 쓰고, 또 자문위원도 하면서 20여 년간 지속됐다.

그리고 2016년 3월 초순으로 기억된다. 심 국장이 양양 농장을 찾아 왔다. 당시 농장이라고 해 봐야 그냥 밭이었고, 과수원을 조성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을 당시였다.

그날 나는 마침 퇴비를 살포하고 있었는데, 20kg짜리 퇴비를 안고 쩔쩔매는 모습이 안쓰러운지 심 국장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살포해 줬던 기억이 새롭다.

농사일이라고는 텃밭 농사 외에 해 본 적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은퇴 후 정식으로 농사를 짓겠다고 나섰으니, 지금부터 좌충우돌할 것이 뻔한 농사일과 농촌생활을 써 보라는 심 국장의 권고였다. 칼럼은 많이 써 봤지만 막상 수필 형태의 농사일기를 써 보라니 걱정도 됐으나, 용기를 내어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귀한 지면을 2주에 한 번씩이나 내어 준다니 너무나 고마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6년 5월에 첫 농사일기를 썼는데, 벌써 154회로 6년 반이 지나가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2~3년 지나면 얘깃거리가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어찌 보면 농사 그 자체는 매년 반복되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농생활이라는 것이 농사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삶 전체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는 얘기들과 생각들을 쓰다 보니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늘 격려해 주는 심 국장을 비롯한 <한국농정> 식구들의 관심과 사랑 때문이었다.

사실 심 국장을 만나면 내년에는 농사지은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유기농 사과를 좀 제대로 생산해 팔 수 있을 것 같으니, 그 얘기를 끝으로 마지막 농사일기를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 생각을 전하지도 못한 채 심 국장은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잘 가시요. 그리고 언젠가 농민·농촌·농업 걱정 없는 거기서 다시 만나 우리 한번 신나게 살아 봅시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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