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지투기는 과연 근절되고 있는가?

  • 입력 2022.10.02 18:00
  • 기자명 사동천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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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천 홍익대 교수
사동천 홍익대 교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투기를 계기로 농지가 사회적 뜨거운 관심을 받은 지 2년이 지났다. 그리고 각계에서 농지법 개정 논의가 전개됐고, 국회에서도 치열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본질을 외면한 채 보여주기식 개정에 그침으로써 투기 유인을 차단하는 장치는 전혀 수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농지취득자격증명의 발급에 있어서 농지위원회 제도를 만들어 비용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농지취득자격증명의 발급 시 농지위원회가 심의하도록 규정한 것이 개정농지법의 핵심이다. 농지위원회가 농지매수자의 농지취득자격증명 신청 시 기재해야 하는 직업, 영농경력, 영농거리 등을 들여다봄으로써 자경의 의사를 확인하겠다는 것이지만, 애초부터 각 요소의 한계 기준을 법정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수자가 자경을 하겠다고 하면 무엇을 기준으로 거짓된 농지취득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궁예가 나타나 관심법으로 재단하기를 바란 것인가? 가령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는 자가 제주도 감귤밭을 경작하겠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허용되는 법제하에서 농지취득자격증명의 발급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자경 여부는 농지취득 후 실제 스스로 경작하는지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행정소송의 남발만 초래하고,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예산만 낭비하는 꼴이 됐다.

불법인 명의신탁은 여전히 판을 치고 있고, 농지에 설치가능하도록 한 태양광시설은 난무하게 됐다. 축사를 짓고 그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한 후 축사는 사실상 폐기시키는 탈법행위도 성행하고 있다. 태양광시설의 파손으로 농지가 오염되고 나면 손쉽게 농지전용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지가상승으로 막대한 이익을 누릴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농지전용의 퇴로가 열려있는 한 명의신탁 등 농지투기는 더욱 성행하게 될 것이고 현재 진행형이다.

한편 농지임차료 상한제가 실시되지 않아 농지의 가격상승으로 인한 전매차익 외에 농지보유 이익도 급증하고 있다. 이미 역사적으로 문제가 됐던 병작반수제를 넘어 생산액의 60%에 이르는 차임도 생겨났다. 농업소득의 증가가 정체된 지는 오래다. 정부는 지역소멸을 방지하겠다고 외치지만, 실은 지역소멸을 부추기는 것이 농지제도다. 소득 없는 농민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충분한 소득을 누릴 수 있다면 농촌에 거주할 사람은 많을 것이다. 농지정책에서 농민의 소득은 사실상 고려하지 않고 있다. 헌법 제121조가 금지한 현대판 소작제도가 판을 친다.

현행 농지법상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 농지를 취득하더라도 바로 한국농어촌공사에 위탁하거나 임차인을 대동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 자경하지 않고도 합법적으로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 이 경우 자경의 의사 없이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를 취득한 것일지라도 면죄부를 받게 된다. 자경 의사와 관계없이 한국농어촌공사의 위탁이나 임대차를 통한 농지 소유가 폭넓게 허용되기 때문이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이렇게 찾아오는 농지소유자의 위탁을 거절할 권한도 없다. 결국 한국농어촌공사를 활용하면 누구나 어느 장소의 농지나 마음껏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된다. 농지법에 의해 헌법이 보장하는 경자유전의 원칙은 파괴된 것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민이기 때문에, 농민은 도시 자본에 의해 사실상 고리의 소작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현재 기후변화와 미·중 간 갈등, 러시아 전쟁 등 국제정세의 변화로 식량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식량 자급률이 23%에 미치지 못하고 약 78%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농산물가격은 급변하고 있다. 식량위기는 먼 미래가 아니라 당면한 과제가 됐다. 국가는 헌법상 국민의 식량안보와 국민의 식생활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농지정책, 제대로 가고 있는가를 반문해 본다. 소수의 투기꾼들을 위해 애써 본질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한국의 농지가격이 압도적 세계 1위라는 것은 농지정책이 최후진국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반문해 본다. 이제 정부가 대답할 차례이다. 이 위기를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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