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⑱]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은 금산 오일장

  • 입력 2022.09.25 18:00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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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금산 사는 지인에게 오일장의 분위기를 대충 들었다. 늦게 열리고 규모가 작아 볼거리가 별로 없으니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단 세 명의 상인을 만나도 가겠노라고 말하니 오라고 하면서 늦게 오라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 우리 일행은 9시경에 이미 북적거리는 금산의 오일장 안에서 어슬렁거린다.

금산 오일장은 멀리서 보거나 시장 안으로 들어가 서너 시간을 돌아보아도 처음 느낌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오일장이 서는 거리, 상설전통시장과 공존하는 청년몰, 그리고 인삼시장이 마치 하나로 연결된 듯한, 거대한 공룡 같은 복합시장이다. 지인의 말과는 달리 엄청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중이고 마침 추석 밑이니 더욱 그런 것 같다. 오일장 안은 차례상에 올릴 닭, 대추, 밤, 사과, 배 등이 지천이고 얼큰하게 무쳐져 술안주가 될 냉동된 홍어와 전을 부칠 러시아산 동태포 같은 것들도 평소보다 흔하다. 그야말로 명절 코밑에 열리는 오일장만의 푸짐하고 넉넉함이 느껴진다.

깻잎으로 유명한 추부가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어 그런지 판매하려고 나온 깻잎 모종이 많이 보인다. 어릴 때 듣고는 거의 쓰지 않아 잊고 있던 단어인 ‘골파’라 쓰인 쪽파도 나오고 족발집 어머니가 명절에만 부쳐 파신다는 매운 고추 잔뜩 들어간 장떡도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장떡을 한 접시 사서는 골목길에 서서 먹다가 웃다가 건들거리며 자리를 뜬다.

 

민물고기, 올갱이, 빠가사리 등 금강에서 나온 민물 어획류를 파는 상인.

 

장아찌로 밥상을 차려주는 농가 맛집의 주인장이 직접 농사지어 들고나오신 쌈채가 싱싱하고 이채롭다. 쌈을 좋아하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주머니 샀다. 기회가 되면 그 농가 맛집에도 한번 가보고 싶다. 금강의 물줄기가 금산의 젖줄이니 당연히 민물고기도 많고 민물고기를 이용한 식당도 많다. 그런 환경이라 오일장에 빠가사리나 올갱이를 들고나오시는 분들도 계시다. 바로 잡아서 들고나와 내장을 뺀 채 얼음물에 담겨 있는데 파시는 분이 건드리니 움직인다. 먹을 땐 생각나지 않을 오늘의 풍경이지만 이 순간에는 마음이 영 편치는 않다.

금산은 야생버섯도 그렇고 재배하는 버섯도 많은 곳이라 한다. 무조건 먹어보라고 써놓은 참나무 표고버섯도 곳곳에 많고 느타리버섯으로 보이는 미루나무 버섯도 많이 나와 있다. 아직 어린 형형색색의 싸리버섯도 있고 이른 추석이라 변변찮아 보이는 능이버섯도 보인다. 아직 송이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보일 때 사지 않으면 구할 수 없으니 싸리버섯 한 바구니를 사고 덜 여문 산초를 들고나오신 할머니 바가지에도 눈이 간다. 장아찌 담그려고 한 바가지 사고는 벌써 두부 구울 생각으로 산초향에 마음을 빼앗긴다.

 

추석 대목이었던 지난 7일 금산장에서 장을 보는 군민들의 모습.

 

청년몰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기 전 전감으로 쓸 동태포를 떠달라고 부탁한 걸 잊지 않아야 한다고 중얼거린다. 오일장엘 가면 그곳이 어디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짐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무거움에 어깨가 눌린다. 강을 끼고 있는 산골이니 당연히 바다에서 온 것들 앞엔 사람들이 많다. 사고 싶지만 우리 집 냉동고에 아직 넉넉한 것들을 떠올리며 참는다.

시장 입구엔 차례 음식 주문받는다는 현수막을 걸어 대놓고 한 광고가 있다. 또 한켠엔 간판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오래된 가게에서 묵묵히 지역을 지키고 있는 분들도 계신다. 남들은 자는 새벽에 일을 시작하는 방앗간, 떡집, 두붓집들이 그렇다. 세는 것을 포기해야 할 만큼 많은 떡 찜기와 두부판을 보면서 그분들의 노동 강도를 짐작해본다. 청년들의 손길이 간 곳은 세련되지만 재래시장 안에서는 낯설다. 오래된 대장간의 기울어진 문짝이 오히려 정겹다.

시장 근처 지역민들이 사랑한다는 생선구이 집을 찾아가 점심을 먹고 지인의 일터를 가보고는 귀가를 서두른다. 돌아가면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어 저녁상을 차릴 것이다. 금산에서의 시간을 맛있게 이야기하며 저녁 먹을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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