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쌀은 주식이다’ 밥 한 공기 300원 보장으로 쌀 지켜야 한다

  • 입력 2022.09.25 18:00
  • 수정 2022.09.27 19:21
  • 기자명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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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이 정책위원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광주전남연합)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현재 밥 한 공기(100g) 원가가 205원 정도다. 쌀값이 최대치로 폭락하기 전인, 약 두 달 전에도 고작 220원 정도였다. 쌀값이 비쌌던 해에도 밥 한 공기의 원가는 230원을 넘지 못했다.

2018년 농민대회 때 ‘밥 한 공기 300원 보장’ 구호가 나왔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달성해 본적이 없다. 올해 물가가 5% 이상 오르고, 비료값은 3배, 인건비는 2배, 각종 농자재값도 두 배 이상 폭등했지만, 쌀값은 거꾸로 45년 만에 최대 폭락비율을 기록하며 지난해 대비 22% 이상 하락했다. 농협창고마다 구곡이 쌓여 있고, 지역농협마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 원씩 적자를 봐 신곡수매를 포기하는 농협도 속출하고 있다. 이에 수확이 시작됐지만 농촌은 초상집 분위기다.

해마다 벼를 재배하는 농지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벼 재배면적은 2020년 82만3,895ha에서 2021년 78만440ha으로 1년만에 4만3,455ha 줄었다. 100% 자급했던 쌀은 2021년 자급률이 90% 이하로 떨어졌다가 2022년 겨우 92% 수준을 회복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쌀값 하락의 원인을, 농민이 쌀농사를 많이 지어서 과잉됐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실제론 매년 저율관세할당물량(TRQ)으로 들어오는 의무 수입쌀이 40만8,700톤이다. 국민들의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만큼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TRQ 쌀의 비중은 증가할 수밖에 없어 8% 수준이던 TRQ 쌀이 현재 국내수요량의 11%까지 차지한다. 하지만 정부는 TRQ 쌀이 쌀값폭락의 원인이라는 얘기는 안한다. 현재의 양곡정책은 쌀 재배면적을 줄이는 데만 맞춰져있어 흉작이나 기후위기 상황이 닥칠 시 아무런 대책이 없다.

정부는 국민들의 쌀 소비가 줄어 쌀이 과잉돼 쌀값이 폭락했다고 말한다. 올해부터 CJ 기업이 햇반에 국내산 대신 미국산 쌀을 사용해 쌀 소비가 줄었다는 얘기는 결코 않는다. 오로지 물가가 올라 국민들이 먹고 살기 힘드니, 밥 한 공기 원가가 220원도 안 되는 쌀값을 더 떨어뜨려야 한다고 그저 농산물 값 때려잡는 데만 혈안이 돼있다.

농자재값이 3배 이상 폭등해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은 국민이 아닌가? 진짜 국민들을 염려한다면 임산부친환경꾸러미, 초등과일간식지원사업, 농식품바우처 등의 예산을 늘려 국민들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면 된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해당 예산을 단 한 푼도 증액시키지 않았다.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국제곡물가격이 폭등했다고 TRQ 쌀 구입비만 대폭 증액시켰다.

지난 8월 국회에서 ‘쌀값 폭락, 쌀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란 제목의 토론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쌀값이 하락한 이유가 쌀의 과잉이 아니라 정부의 잘못된 양곡정책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양곡관리법 제정 과정에서 이미 명시한 자동시장격리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농정관료의 명백한 위법행위가 있다는 것도 드러났다. 10월 15일 수급안정대책을 발표해야 함에도 이를 발표하지 않은 점, 다음해 2월이 돼서야 시장격리를 시행한 점, 1차 시장격리 물량이 초과생산량에 미달한 점, 시장격리곡은 공공비축미 매입절차를 따라야 함에도 역공매방식의 최저가입찰로 쌀값을 떨어뜨린 점, 농민들과의 협의를 무시한 점 등 농식품부의 명백한 위법행위가 지금 쌀값하락의 주범이다.

또한, 쌀이 과잉이라고 하면서도 밥쌀용 쌀은 꾸준히 수입해 시장에 푼 점과 통계청의 엉터리 생산통계로 인한 시장혼선 등 정부당국의 잘못된 양곡정책이 쌀값 폭락의 주범인 것이다.

이제, 농민들은 자동시장격리만으로는 쌀값을 안정시킬 수 없음을 똑똑히 경험했다. 현재의 양곡관리법은 계속해서 하락하는 쌀값을 막을 수 없다. 이제 농민들은 변동직불제를 부활해야한다고 요구한다. 최소한의 생산비를 보장할 수 있도록 적정가격을 명시하는 목표가격제를 양곡관리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쌀이 무너지면 전체 농업의 붕괴로 이어진다. 당장 구곡을 전량 격리하고 공공비축미를 100톤 이상으로 늘려 신곡수매대책을 세워야 한다. 쌀을 지켜내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다. 그럼에도 쌀값안정화법을 둘러싸고 여야가 모두 이를 정쟁의 대상으로 일삼는 정치권의 행태가 심히 우려스럽다. 지금은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고, 나락을 불태우는 투쟁을 하지만, 이대로 쌀을 포기하면 정치권을 갈아엎으러 갈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분쟁 이후 식량수출국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농산물 수출금지 조치였다는 것을 망각하지 말아야한다. 그런데도 윤석열정부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추진을 통해 오히려 자국의 식량주권과 검역주권을 송두리째 포기하려 하고 있다. IPEF를 추진하면서 ‘안정적 공급망’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수출국들에게 위급상황에도 농산물 수출을 계속해달라고 구걸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만 봐도 한미동맹은 미국의 이익 앞에 한낱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증명됐다. 미국은 우리에게 자유무역협정(FTA)을 강요하면서도 자국의 보호무역주의는 강화해 왔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한다. 뛰어오르는 국제곡물가격 때문에 식량수입국들에서 폭동이 종종 일어나는 기사를 접하면서, 식량자급률 20% 붕괴를 맞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와 같아 질까봐 두렵다.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됐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당장의 쌀값 보장대책을 세우길 바란다. 쌀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의 곡물자급률은 고작 2.6%에 불과하다. 쌀은 국민의 주식이다. 주곡을 포기하는 나라는 주권국가가 아니다. 최소 ‘밥 한 공기 300원 보장’으로 농민들이 내년에도 계속 농사지을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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